130호 [시사포커스] 조세개혁과 '자영업자 소득파악위원회'
2003-04-04 14:05 | VIEW : 26
 
130호 [시사포커스] 조세개혁과 '자영업자 소득파악위원회'
정부 위원회의 현주소`=`부실공사 中`(?)

박상호 / 정치외교학 석사2차


늘 그래왔다는 것. 나의 일상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어떤 패턴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없을 듯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 꼬박 챙겨먹는 내가 어쩌다 거른 아침 식사에 속쓰림을 느끼고, 식후 연초를 즐기던 내가 불연초에 생명이 단축됨을 느끼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만일 우리 중의 누군가 늘 보아오던 9시 뉴스를 시청하다가 국무총리 산하의 뭔 위원회 하나가 해체되려 한다는 보도를 접했다고 하자. 취재한 기자양반이야 열심히 돌아다니며 인터뷰도 하고 전문가 자문도 구하고 했겠지만, 어느 누가 ‘세상에 별일도 다 있네’라고 반응할 수 있을까?

   본래 한국에서 위원회라는 것은 설립 당시에는 나름의 거창한 목표와 과제를 가지고 발족한다. 그리고 당초 계획했던 그것들을 달성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 기능을 못하다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나아가 그 위원회와 관계된 사람들의 뇌리에서조차 사라져 별다른 의식(儀式)없이 소멸되기 마련이다. 이건 대통령, 국무총리 밑에서나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는 빈번한 일이라, 이런 잊혀져간 위원회들을 정기적으로 판별해 일괄 정리하는 위원회가 설립되어야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재미가 없다.

   맞다. 더이상 재미가 없기 때문에 이런건 바꿨으면 하는게다. 지난 4월 국무총리산하에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의 공정한 보험료 부과기준 산정과 관련된 도시자영업자의 정확한 소득파악 방안 마련을 목적으로 ‘자영업자 소득파악 위원회’가 발족했다. 전반적 조세개혁과 연계된 소득파악 방안 마련이라는 거창한 중장기 과제를 내세웠지만, 당시 무리한 국민연금의 확대실시와 의료보험 통합 등에 관련해 밀려드는 국민적 반발을 어떻게든 무마시키려는 얄팍한 의도는 뻔히 보이는 것이었고, 그에 걸맞게 위원회 구성도 학계, 민간전문가 및 시민단체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여기서 합의된 건의안이 조금씩 수정되고 때로는 삭제되어 총리에게 보고되었다고 그러니 이럴바에야 차라리 해체되는게 낫지 않겠냐는 위원들의 항변은, 마치 형에게 두들겨 맞고 더 맞을까 두려워 형의 비리를 부모에게 숨겼다가 나중에 후회하고마는 순진한 어린아이를 연상시키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의 재정정책이 민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왔으며, 언제부터 재경부가 팔짱끼고 좌시하고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조세제도에 관련한 갈등은 그 사회가 누구에게 더 유리한 사회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사회변동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왕의 과세권을 둘러싼 의회내에서의 갈등이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우리는 연도표를 펴놓고 줄줄 외워댔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을 누가 세금을 더 걷자고 하는지에 따라 구분하지 않았던가?

   자영업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파악을 비롯한 전반적 조세제도의 정비 없이도 국민연금과 통합의료보험제도가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기획된 정부의 무모한 실험은 기본적으로 대다수의 봉급생활자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이를 시정해보겠다고 국무총리에 의해 소집된 위원회가 다시 재경부의 횡포속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예산만 낭비하고 사라지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니 솔직히 재미없다.

   한편 그들의 관심이 이미 내년에 있을 총선으로 옮겨가고 있는 동안, 우리의 관심 역시 한동안은 조세형평성이니 IMF이후 더욱 악화된 정부의 재정적자니 하는 것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은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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