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호 [시사포커스] 한미행정협정
2003-04-04 14:13 | VIEW : 30
 
135호 [시사포커스] 한미행정협정
주한미군의 솟대 - SOFA

김성현 / 국어국문학 석사3차

솟대의 기원은 삼한시대의 신성불가침 구역인 소도에서 출발한다. 죄인이 도망쳐도 잡을 수 없는, 제사장인 천군의 치외법권 지역. 지금 우리가 시골길 어귀에서 만나는 솟대는, 한때 절박했던 도망자들이 붙들고 늘어졌던 제정분리 시대의 유물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제나름의 솟대를 하나쯤 가진다. 영화의 외설성을 시비삼는 사람들에겐 음비법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미성년 매매춘은 안된다는 김강자 서장한테는 구성애 아줌마의 격려편지가,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정치 8단들에게는 케케묵은 지역감정이 여전히 물고 늘어질 만한 솟대가 되어 준다. 이 솟대들의 특징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신화의 영역으로 물러설 줄을 모른다는 점이다.

새천년이 되어도 여전히 돌아갈 줄 모르는 주한미군들에게도, 한미행정협정(SOFA)이라는 든든한 솟대가 하나 있다.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의한 협정’인 SOFA는, 67년에 정식으로 협의되어 91년에 개정되고서도 한미간의 공정한 행형처리에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19일에 이태원의 외국인전용주점 ‘뉴아마존’에서 있었던 주한미군의 여종업원 살인사건의 수사과정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21일 오후 미8군 범죄수사대(CID)에 의해 파주의 캠프 게리오웬에서 용의자인 크리스토퍼 메카시가 검거될 때까지 한국의 경찰은 명백한 증거물들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미군 측에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은 범인이 자백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병인도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수사당국의 조사를 제외한 시간에 범인은 평택의 미군기지 구치소에 수감된다.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이나 진술의 조작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SOFA에서 규정하고 있는 신병인도불가(22조)의 원칙에 의한 것인데, 이 때문에 91년 이후 한국이 미군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3%에 머물고, 96년에서 98년 8월의 기간 동안 행정협정 대상 미군 범죄자 656명중에서 신병인도를 통해 구속 수사를 받은 경우는 7건에 불과하다. 일본이나 나토가 기소시점에서 신병을 확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치가 보여주는 대로라면, 한미행정협정(이하 행협)은 범죄를 막기보다 조장하는 협정이라 할 수 있다. “범죄에 대한 응징력이나 처벌력이 미약한 곳에서는 범죄유혹이 억제되기 어려운 법”이란 한국일보의 지적처럼, 불평등한 행협의 존재가 미군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는 혐의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수사와 현장검증 과정에서 보여준 범인에 대한 용산경찰서의 과잉보호적 태도와 CID의 오만함은, 이후의 공조수사 자체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구속도 수사도 우리 손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미군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이런 점들로 볼 때, 주한미군 문제는 행협의 조항 몇 가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한미 관계의 시금석이라 할 만하다.

다시 솟대 이야기 잠깐. 솟대를 붙잡은 범죄자들은 사실은 씨족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붙들어야 할 솟대도 SOFA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물러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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