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호 [시사기획] 정상회담과 한국권력구조의 균열-③한미관계 재정립의 요건
2003-04-04 14:26 | VIEW : 28
 
146호 [시사기획] 정상회담과 한국권력구조의 균열-③한미관계 재정립의 요건
이제 미국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보혁 / 한국정치연구회 북한분과 연구원

지금 한반도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들어섰다. 앞으로 그 방향이 어떻게 될는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 요소를 차지하고 있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적대적 대결관계에서 협력적 공생관계로 나아갈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남-북-미 삼각관계의 한축을 구성하고 있는 한미관계의 변화 가능성 및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김정일정권의 생존전략이 어우러져 나타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국방장관회담의 개최와 경의선 복구사업은 분단의 물리적 버팀목이었던 남북한 군이 대화와 협력의 계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단기간에 오랜 적대와 반목의 터널을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선 요인으로는 김대중정부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대북정책에 북한이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과 체제안보 및 경제재건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합리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관계 개선은 단순히 수세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북한에게 남북관계 개선은 북미관계 개선으로 가는 교두보로도 작용한다는 판단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서는 남북간 화해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 10월 초 북한의 조명록 특사의 방미는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을 병행하여 체제안보 및 경제부흥을 기하려는 평양당국의 적극적인 생존전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북미 양국은 핵, 미사일문제를 비롯하여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 대북 식량지원 등을 통해 사안별 접촉을 벌여왔지만, 양국간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발언처럼, 양국간에 관계개선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즉 양국간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던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북미관계 개선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한편 일부 관찰자들은 북미관계의 이같은 진전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및 대미 관계는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한반도 정세 변화의 특징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두축의 관계 변화에 상응하여 기존의 한미관계가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변화의 열쇠
한편, 남북 및 북미관계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한미관계의 변화는 촉진 및 제약요인으로 전망할 수 있는데, 한미관계 변화의 촉진요인으로는 먼저, 대남 및 대미관계를 비롯한 북한의 국제사회와의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북한위협론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개선의 뚜렷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북한위협을 거론하여 왔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 핵동결 및 미사일 발사 유예 약속, 남한과는 국방장관회담을 통한 군사적 신뢰구축의 길을 터놓았다. 둘째, 지난 6월 이후 남북이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변화는 관련국들의 대한반도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를 통해 주변국들과의 비대칭적인 남북한 교차승인구도를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한반도 주변국가들은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한반도 정세에 대응하여 남북한을 동시에 껴안으려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북미관계의 급진전과 뒤이은 중국의 남북등거리 외교, 일본 모리총리의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희망 등은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선국면으로 들어선 국내정치적 상황 및 아태전략의 유지 등으로 한미관계의 근본적 변화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조명록 특사의 방미를 준비하는 김계관-카드먼 회담기간 동안, 코언 국방장관은 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북한위협 및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재차 강조하였다. 이같은 점과 함께 현 남한정부의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방침 역시 단기적으로 한미관계의 변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 철수의 경우 이 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를 제약하는 외적 요인으로 대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향후 한미관계를 양국간 호혜평등관계 및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전망해 볼 수 있다. 먼저, 양국간 호혜평등관계의 수립은 무엇보다 한국내 움직임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한미간 현안들에 대해 한국의 여론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를 정부가 수용하여 대미 협상에 임할 경우, 한미관계의 불평등성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관계는 한국내 움직임이 중요
둘째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관련해서는 앞의 문제보다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기원하는 미국의 아태전략에 편입되어 있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 하는 점이 가장 큰 변수이다. 미국은 여전히 주한미군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 동맹체제를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의 하위요소로 존치시킨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및 남한이 참여하는 평화체제 수립을 통해 한반도 전역을 자국의 실질적인 영향권하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중국,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와 지역내 또다른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일방적인 대미의존외교에서 벗어난 주변국간 균형외교의 전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형성을 연계하는 전략적 접근 등이 필요하다.

한미관계는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와의 삼각게임 속에서 상호작용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에 북미관계 급진전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한미관계의 지속 속에서 다시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미관계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남북관계 개선 양상과 남북간 협력의 힘이 냉전적이고 불평등한 기존 한미관계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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