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호 [시사기획] 가족의 변화-①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통합
2003-04-04 14:40 | VIEW : 28
 
154호 [시사기획] 가족의 변화-①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통합
가족은 사회환경에 적응하는 유기체

김성천 교수 / 본교 아동복지학과

가족의 붕괴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해 여대생이 어머니의 간통을 고발하는 글을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하고, 보험금을 노린 아버지가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는 일도 있었다. 현재의 가족의 변화, 붕괴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새롭게 고찰해 보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산업화 이후 세계의 각국은 가족을 지지, 보완 및 대리하기 위한 정책들을 수립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개인과 사회의 효과적인 존속을 위해 중요한 기능적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가족형태가 급변하고, 그 기능이 약화되며, 가족 및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상황의 불안정성, 전통주의와 근대주의, 가부장주의와 페미니즘이 혼돈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기혼여성의 취업 증가, 이혼과 재혼의 급증, 독신가구과 소년소녀가장가족의 증가, 동거가구 및 동성가구의 등장 등의 현상에 대해 극단적으로는 가족의 붕괴라는 진단도 내려지고 있다.
현대 가족은 과거 가족이 지녔던 주요 기능들이 약화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능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거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된다. 취업모의 증가, 수명의 연장, 가족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심신장애인의 증가, 소가족화, 복지서비스 축소정책 등의 현상이 오히려 가족의 복지기능을 더욱 중요시하는 요인이 된다.

한편, 가족과 사회를 보는 시각도 변화되었다. 과거에 가족은 사적 영역으로 취급되어 국가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다는 입장을 지녔지만,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왜곡하는 이데올로기로 간주된다.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 증가는 국가가 가족에게 적극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가족의 변화를 조망하는 관점은 크게 보수적 관점과 진보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보수적 관점에서는 현 가족의 변화를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이들은 가족은 사회의 존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하위단위로,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고 부인은 가사를 책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역할분담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족유형에 벗어나는 가족의 상태를 병리적인 가족해체로 보고 전통적 가족유형이 붕괴되는 것을 주요한 사회문제로 보고 있다. 독신가족, 동거, 동성가족, 한부모가족, 취업모가족 등은 문제가족이라고 보며 전통적 정상가족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전통적 가족관과 새로운 가족관 공존
반면에 진보주의 관점은 특정한 가족형태가 사회의 필수 불가결한 제도라고 믿는 것이 신화에 불과하며, 전통적인 가족역할에 대한 규정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억누르는 무기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가족이 사회체계에 기능하는 하위체계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진보주의자들은 가족제도의 유용성을 인정하나 단일한 가족형태로 가족이 획일화되는 현상을 반대한다. 특정 가족형태의 지향은 사회정의, 인간의 자유, 건전한 사회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므로, 다양한 개인과 가족의 욕구에 맞추어 다양한 가족형태가 인정되고 선택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은 가족의 사회적응을 위한 변화이지 가족해체라고 보지 않는다. 가족의 형태는 개인의 형편과 선호에 따라 선택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한국의 전통적 가족의식은 보수주의 관점으로 대표되는 집합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았다. 개인은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고 이해되었으며, 세대간 위계질서에 기초한 부계혈통 혈연중심의 가족간 연대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 연령의 불평등적 관계로 표현되는 전통적인 가족주의, 집단주의, 귀속주의 성격은 현대사회에서 평등주의, 개인주의, 성취주의로 변화되어 가면서 다양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 문화지체현상과 세대와 성에 입각한 가치갈등으로 인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정형화보다는 유연화가 인정되면서 새로운 가족문화가 형성되는 긍정적인 기능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과 근대의 결합이 친족관계의 양계화나 효, 부양, 상속, 가족전통 등에 있어 가족주의와 개인주가 혼합되어 조정되거나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주의적 가족중심 가치관은 남성들과 기성세대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젊은 층에서는 개인주의 가치관에 따른 양성평등주의와 부부중심주의 따위의 신가족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전통적인 가족중심적 가치관의 고수와 새로운 가족가치관의 발현이 거의 대등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평가된다.역사적으로 가족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하나의 사회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 생명력과 적응력이 떨어지는 정형화된 폐쇄체계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개방체계로서, 사회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

이러한 점에서 현 가족의 변화는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정형화보다는 유연화가, 그리고 규칙과 규율의 적용보다는 정서와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가족기능이 부각되는 방향으로의 움직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혹자들은 현 가족의 복잡한 변화와 문제를 지적하면서 전통적 가족의 복원이나 고수를 주장하지만 토플러가 『제 3의 물결』에서 일찍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시대적 역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대부분 가족이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면서 공존하게 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현재도 서구에서는 다양한 가족형태가 공존하고, 전통적 가족과 같은 법적, 관습적, 사회복지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위험
다양한 가족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우리는 ‘특정한 형태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집착은 오히려 더 많은 사회문제들을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늘어가는 이혼, 재혼가족에 대한 편견은 아동들의 학교부적응 문제와 부모의 재적응에 장애가 될 것이다. 실제로 정상가족 대 비정상가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정상가족에게도 상당한 압력이 된다. 정상가족 상황을 외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가족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위장하는 ‘요새가족’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폐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어떤 가족형태든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어떠한 가족 형태를 구성하든 각각의 가족이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고, 지원하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