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호 [편집위원의 세상보기] “왜 이 사람들은 공부를 할까”
2003-04-04 14:43 | VIEW : 35
 
155호 [편집위원의 세상보기] “왜 이 사람들은 공부를 할까”

윤상호 편집위원

형에게
오랜만입니다. 형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보는건 처음인 것 같군요. 형이 떠난지도 벌써 4년입니다. 별일 없죠.저에게는 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웃었지요. 학부 때도 공부를 안 하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대학원을 갔느냐고. 제가 생각해도 웃기긴 웃겼습니다. 군대를 갔다와서 밀린 학점을 채우느라고 전공공부를 하다보니 공부에 흥미가 생기더군요.

그런데 대학원에서 조금 생활을 하다보니 요즘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이 사람들은 공부를 할까’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교에서 강사를 하는 선배와 술을 먹는데 선배가 그러더군요. “30대 중반에, 시간당 2- 3만원의 돈을 받고, 의료보험도 없고, 연금도 없고, 퇴직금도 없고, 법적 지위는 일용잡급직” 처음에 일용잡급직이라고 하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안 왔는데 누가 그러더군요. ‘노가다’ 하는 이들이 ‘일용잡급직’이라고. 공부를 하기로 작정했을 때, 이 정도 고생은 예상하지 않았냐고요. 물론 그랬겠죠. 그러나 공부는 땅파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도 딸려있고. 먹고살기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평일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는 사람 중 대부분이 대학강사라고요.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다 보니까 어쩔 수 없겠지요. 그래봤자 대부분이 배우자의 맞벌이나 집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나이 30대 중반이 넘어서 말이죠.

박사를 마치고 나면 연구를 하고 싶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책상조차 없습니다. 지도교수 연구실이나 후배들이 자리잡고 있는 연구회 공간으로 몸을 옮기지요. 도서대출이 안돼서 후배들에게 책 좀 빌려달라고 부탁도 하고요. 그것도 출신대학에 있을 때지, 타대학으로 강의를 나갔을 때는 괜히 도서관을 서성이거나 벤치에서 애꿎은 담배만 피워댑니다.
남자들은 한참 생생할 나이에 군대 때문에 머리가 굳는다고 투덜대죠. 이렇게 30대와 40대를 허송세월로 보내는,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학문의 토양을 쌓아갈 사람들입니다. 생계 때문에 연구는커녕 책 읽을 시간도 없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라구요. 물론 강사들의 노동조합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게 또 웃깁니다. 아까 말한 사람들 역시 ‘조금 있으면 나는 교수가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지요. 여기서도 연줄이 중요해요. 지도교수님의 의중에 따라 미래가 결정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내는 시다바린갗라는 반문이 들 정도로 목을 매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행동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누구도 총대를 매기는 힘들어요. 형.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학원을 계속 다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럴 게 아니라 일찌감치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요. 괜한 소리만 늘어놔서 형 걱정거리만 만든 건 아닌가 싶네요. 예전에 농활 가서 형이랑 먹던 막걸리 생각이 나네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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