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사회쟁점] 사립학교법, 그들만의 사적 소유
2003-04-04 14:44 | VIEW : 25
 
158호 [사회쟁점] 사립학교법, 그들만의 사적 소유
공공(空公)성, 그 짓밟힌 합리성

송권봉 교수 / 진보교육연구소 사무차장 jinboedu@jinboedu.jinbo.net  

이른바 ‘공공영역’은 오늘날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다. ‘탈규제-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국가가 관리하던 공공영역을 ‘비효율과 자율성’의 명목으로 시장에 이양한다. ‘복지’를 통해 국민통합과 민주주의의 기반을 이루겠다던 정치이념이 퇴색하며 국가가 담보하던 영역들이 사실상 해체되고 있다. 대규모 실업사태와 복지후퇴로 인한 사회분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위험’에 직면한 개인은 자기책임을 강요받으며, 돈 없고 능력 없는 자는 사회통합에서 배제되고, 20/80의 사회가 고착화된다.

‘공공영역’에는 한국통신과 같은 공기업,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 교육제도 등이 있다. 공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민간부문처럼 당장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보다 국민경제의 균형적인 발전과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작동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대중의 사회적 권리인 보건 복지 및 건강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는 질 높고 값싼 서비스를 통해 모두가 기본적인 권리를 향유하기 위한 영역이다. 교육의 경우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주체를 형성하며, 동시에 개인의 발달을 꾀하고, 지식 등의 전수를 통해 사회 통합을 의도한다.

이렇게 ‘공공영역’이 출현한 데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확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사실 ‘소유제도’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제도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몸뚱아리밖에 없는 노동자를 포섭하여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게 한 뒤 그 상품을 전유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생산수단 덕분에 생산할 수 있었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줬으니 남은 몫은 내 것이라는 소유관념을 취한다. 임금 이상의 것을 요구하거나, 남의 것(예컨대 자본가의 재산)을 침해할 경우 법적 응징이 뒤따른다. ‘소유권’이란 관념은 이제 넘볼 수 없는 것이고, 소유는 미덕이 된다. ‘소유’가 보편적인 미덕으로 찬양 받게 되자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소유하지 못한 대중은 무지하고 빈곤하고 노동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병든 인간은 일을 할 수는 없었고, 기술을 모르는 무지한 자가 노동현장에 투입되기는 곤란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가 도래했다. 그러자 보편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가 개입한다. 노동대중의 집단적인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상태를 보장하는 ‘빈민구제법’이나 ‘아동노동의 금지’ 등은 결코 사적 자본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으로 국가가 담보한 것이다.

교육은 국가가 관리해야
예컨대 학교제도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위대한 조절장캄라는 찬사를 받았다. 실제로 교육은 자본가들의 질서를 보존하고 확대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학교제도는 노동자들이 급속한 발전에 적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생산 영역과 달리 재생산 영역 중 하나인 교육을 개별 자본가에 맡겨 두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교육결과 역시 쉽게 기대할 수 없었다. 이때 자본의 보편적 대변자로서 ‘국갗가 교육제도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담당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계급, 인종, 문화, 성별 차이에 따라 교육기회는 불균등했고, 교육내용 역시 불평등한 것이었다. 교육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첨예하게 드러났으며, 교육권 확장을 위한 투쟁의 결과는 교육 공공성의 확대란 방향으로 이어졌다. ‘교육’이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공공의 성격을 지닌 영역이 되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개별 자본의 이해에 맞춰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자본의 이해를 위해 조직된다는 점 그리고 계급, 인종, 문화, 성적 차이에 따른 대중들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대중에게 점점 열려져 왔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모든 국민이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상의 언명은 후자의 관점을 전유했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

한국사회에서 공공영역은 한번도 제대로 제도화되어 본 적이 없다. 허술하기만 한 사회보험체제나 GNP대비 4.3%의 교육재정 등은 국민대중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담당할 공공영역이 그리 크지 않았음을 웅변해 준다. 그런데 이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허술한 공공영역마저 아예 없애 버릴 기세다. 특히 교육현실에서 미흡하긴 했지만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보장해오던 ‘평준화 정책’은 이번 정부의 ‘자립형 사립고 강행 방침’에 따라 사실상 폐기 처분될 처지이다. 또한 사립학교장들의 치열한 로비와 자유시민연대의 ‘사학접수’ 등의 논리 및 정치세력간의이해타산으로 아직까지 개정되지 못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문제’는 최소한의 합리성마저도 짓밟는 물질적 소유권이란 한국적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추악한 권리
‘내가 만든 학교를 감히 누가 가져가!’라는 소유관념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유래 깊은 것이다. 해방 후 ‘토지개혁’이 실시되자 당시 지주세력 등은 재산을 은닉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학교설립에 나선다. 학교를 세워놓고 ‘교육자 입네’ 자랑할 수 있고, 학교운영으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며, 동시에 등록금 등을 전용하여 자기 재산까지 몇 배로 불릴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기였던 셈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며 ‘사학의 자율성’ 운운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한 천박한 표현을 좀더 세련되게 치장했을 뿐이다. 이런 발상은 국가와 사립학교 설립자간의 긴밀한 유착과 공조를 통해 역사적으로 구축되어 왔다.

한편 가진 자의 소유의 미덕(?)은 한 학기 등록금이 360여만원에 달하는 자립형 사립고나 기여금 10~20억을 쾌척할 경우 주어지는 기여입학의 권리에서 추악하게 드러난다. 부자를 위한 교육기회가 제공되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돈주고 하는데 누가 말릴 수 있는가. 사회적인 비난은 이들의 소유권 행사를 막을 길이 없다. 베블렌 효과는 부자들의 과시소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상류층은 상품을 거침없이 구매할 줄 알아야 소유의 미덕이 살아난다. 못 가진 자에게 그림의 떡이든 말든. 공공영역과 관련된 기구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재생산의 비밀을 간직한 현실성의 재배치에 불과하다. 이제 이런 ‘민영화’ 바람에 맞장구치는 자들의 뻔뻔한 소리를 듣는다. 내가 출자했으나 나의 것이다.

그러나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는 순간 학교는 설립자의 재산이 아니다. 법적으로 공익적인 학교법인의 재산이 되며 사학재단은 단지 관리의 업무를 가질 뿐이다. 교육이 제대로 된 기회와 내용의 평등을 가지기 위해서는 ‘학교’에 대한 소유 관념을 전화시켜 내는 투쟁이 계속되어야 한다. 결국 교육의 공공성을 실천적으로 재정립하는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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