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호 [시사기획] 노동시장유연화와 불안정노동자
2003-04-04 14:46 | VIEW : 30
 
159호 [시사기획] 노동시장유연화와 불안정노동자
약육강식의 세상 속으로

성은미 편집위원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유연화로 비정규직, 실업자,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총 3회의 걸친 이번 기획은 불안정 노동자의 발생과 그들의 삶의 조건을 고찰하면서 우리의 현 주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IMF 관리 이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이나 파업을 진행하려고 할 때 이데올로기적으로 공격받았다. 그 공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IMF관리 이후 공격의 주요 골자는 임금인상이나 파업은 기업을 망하게 하고, 기업이 망하면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노동자들도 결국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IMF 관리 이후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이를 위한 파업투쟁을 자제해왔다. 그리고 파업을 하더라도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될까하는 두려움으로 ‘공익’, ‘공공선’을 앞에 내걸어 왔다.

  반면에 국가와 자본은 ‘공공선’이나 ‘공익’의 이름으로 그 동안 유보해왔던 일들을 진행한다. 한국은 1970~80년 이례적인 경기 호황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공급의 부족을 경험했다. 한편에서는 보다 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상품들이 한국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지만 노동시장에서 노동력 공급부족은 임금을 인상시키고 노동시장을 경직시켰다. 노동시장 경직은 사업장이나 국가 차원에서 노동통제와 기술혁신 역시 어렵게 만들었다. 자본의 이동강화와 노동시장 경직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에 직면했던 김대중 정부와 한국의 독점자본은 IMF 관리를 시점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한다.

   그 공격은 김대중 정부의 ‘국가 부도설’에 대한 과도한 선전과 금융자본의 지구적 이동이 강화된 시점에서 소위 ‘국가신인도’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단판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김대중 정부와 자본은 노동시장유연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분할 통치 전략을 통해 구원 약속을 얻고자 한다.

  노동시장유연화는 ‘생산체제 자체의 유연성을 제고시켜 조직의 신축적인 대응능력을 갖추려는 경영전략’이다. 여기서 새로운 경영방식은 기업 특수적 직무를 수행하는 핵심 노동자를 제외한 노동력을 유연화함으로써 노동시간·임금·계약형태·보호형식 등을 자본의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는 정규직에 고용되어 있던 노동자가 하청사업장의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되고 그의 임금과 노동시간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재계약 되거나 해고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게 된다.

  이제 노동시장유연화는 ‘고용 불안정성’에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으로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고용과 실업을 번갈아 경험하게 된다. 고용과 실업의 반복은 노동자들의 힘과 자율성을 무력화시키고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잉여를 창출할 조건을 형성한다. 노동시장유연화 속에서 불안정 노동자들은 장시간·저임금을 경험하게 된다. 1999년 정부가 조사한 「근로자파견 실태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자본은 ‘임금비용절감과 일시적 업무량 확대대응’의 목적을 위해 노동시장유연화를 선호한다.

금속연맹에서 2000년 실시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태 및 의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반을 받고 있었으며 상여금은 39.9%에 불과했다. 불안정 노동자들은 저임금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위험한 노동으로 높은 산재발생률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유연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자는 법적·제도적 권리로부터 배제되어 있어 법적 휴일·휴가에 따른 수당 역시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50%에 불과하다. 사회보험에서 불안정 노동자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직장가입자로 편입돼 있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불안정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더욱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노동시장유연화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는 최대 58%를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어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반 이상이 불안정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노동자·장애노동자·이주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안정 노동자들로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이 희박하다. 이들은 성·장애·인종과 관련되어 이중·삼중의 착취를 받고 있다. 모성보호법개정에 따른 야간근로문제, 장애노동자들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은 유례 깊은 일이다. 이들은 노동시장유연화 속에서 노동시장의 최하위층을 점유하면서 남성·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속에서 국가와 자본의 구원 약속이던 노동의 분할 통치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자의 경쟁과 분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자본과 국가가 만들어 놓은 약육강식의 세상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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