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호 [사회쟁점]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 2
2003-04-04 15:01 | VIEW : 29
 
163호 [사회쟁점]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 2

죽음은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이다. 나는 어떤 원칙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다양하듯 우리의 죽음도 다양하다. 아주 개인적인 죽음이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제도의 무넺로 다가올 때도 있다. 아래 두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죽임을 행하지 말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임을 행하자고 한다. 어떤 기준으로 죽임을 행하거나 행하지 말 것인가.<편집자주>

안락사, 죽음에 대한 주체적 권리

박만엽 / 철학과 강사

지난 11월 15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의 ‘윤리지침’ 선포를 계기로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다. 의사협이 내놓은 ‘윤리지침’은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못한 부분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의료계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는 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핫 이슈로, 이에 대한 명시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현실은 대체적으로 생명 존중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탈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윤리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문제는 근원적으로 자살과 안락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절대적 도덕주의와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이른바 ‘효용성의 원리’를 강조하는 공리주의간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의사협이 내놓은 윤리지침은 이른바 생명윤리에 대해 많은 쟁점을 갖고 있다. 생명윤리의 기준 마련해야윤리지침은 말 그대로 의사의 치료 행위를 위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기준’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우리의 현실에서 법과 의사의 윤리지침이 충돌하는 것처럼, 기준의 문제는 기준을 설정하고 해석하는 주체(집단)에 좌지우지될 공산이 크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특히,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관통하는 사회적 기준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공적(公的) 기준에 그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의사 지침은 바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환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결국 의사 개인의 주관적(사적) 판단이다. 특히 안락사, 뇌사의 문제에 처한 의사의 경우에는 의료지침에 대한 공적 기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인류에게 있어서 생명의 문제는 인격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간 종교계나 법조계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접근은 거의 원론적인 수준을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기준 문제는 부합과 충돌의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충돌 쪽에 있다. 지금이라도 의사협이 내놓은 생명윤리에 대한 쟁점을 담론화·공론화해 생명윤리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상생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기준의 문제를 소극적 안락사에 적용해보자.

소극적 안락사는 말 그대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지 않아 환자가 자연적으로 사망하는 시점보다 빨리 환자가 사망하게끔 하는 행위를 말한다. 환자의 소생 가능성 여부와는 무관한 의사의 치료 행위가 개입됐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 중단 행위를 단순히 안락사로 오해하는데는 현대의 첨단 의료기술로 인한 생명연장의 치료라는 점을 간과한데서 비롯된 문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환자 자신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묵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의사협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보다는 존엄사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죽음에 대한 패러다임이 단순히 생의 마감이라는 종래의 생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주체의 권리와 품격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람들의 집단에서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그 기준을 적용하는 실천의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의사협이 내놓은 윤리지침은 단순히 의사 개개인의 양심과 판단을 위한 기준의 역할뿐 아니라 문제 발생시 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심의 절차의 기준역할 역시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협 역시 법조계나 종교계가 우려하는 생명경시풍조, 현대판 고려장의 확산 등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공적인 의료심의기구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법이 정말로 최소한의 도덕이라면, 법과 종교는 의사협이 내놓은 윤리지침을 상생의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개인이 육체와 정신의 주권자“자유론”의 저자 존 슈튜어트 밀이 말한 것처럼, ‘권력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구성원에게 그의 자유 의사에 반하여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서는 그 개인이 주권자이다.’ 그렇다!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신의 마지막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단 윤리지침의 실천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할 경우에 그 빛을 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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