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호 [아웃사이더] 나는 여성이 아니다?
2003-04-04 15:16 | VIEW : 40
 
170호 [아웃사이더] 나는 여성이 아니다?

cumi / MtoF 트렌스젠더

나는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리고 나는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는 것이 즐거우며, 여성과 함께 있을 때 더 편하고 정서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성이 아니다. 이는 내가 육체적으로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여성이 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는 단지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내가 편한 행동 방식을 따라 가고 싶고 내가 원하는 삶의 패턴을 가지고 싶다. 나는 자연스러운 여성이 되고 싶다. 나는 그래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에 싸우고 싶고, 일상에서 미시적으로 느껴지는 남성 중심 문화를 거부하고 싶고, 남성에 종속되어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 그냥 내 자신으로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
나는 하리수씨가 TV에 나올 때마다 지금 내 자아가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녀는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성적인 대상으로 변해야만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나는 이런 생존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드레스 업을 하고, 친구들하고 거리를 다니거나 카페에서 수다떨 때, 남자들의 흘깃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나는 여지없이 나의 행동을 그들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만들어 낸다. 가능하면 그들에게 나를 포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이건 테러에 대한 공포다!) 나는 담배 피우는 것을 즐기지만 절대 드레스 업을 하고 거리에서나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남성 운전자들에게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분명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나는 몇 일 전 담배를 피우면서 운전하는 여성운전자에게 창문을 열고 욕하는 이상한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운전을 할 때 과도할 정도로 교통신호를 잘 지킨다. 혹시라도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되면, 그리고 혹시라도 운전면허증을 제시해야 된다면, 나는 결코 교통신호 위반과 상관없이 나의 자존심은 교통경찰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남성들의 전근대적인 성관념을 나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생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보호 본능은 나를 매저키스트로 만든다. 나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여성이라는 두꺼운 옷을 걸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나를 억압하는 것들 속에서 나의 욕망을 만들어 간다. 어렸을 적 나는 여성이기에 행복한 나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가끔씩 남성의 보호를 받고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회적으로 재생산된 내 안에 또 다른 여성을 만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이런 생존방식에 거부감을 느낀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획일화된 이분선을 넘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트렌스젠더라는 이상한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살기 위해 나를 죽이는 것들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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