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호 [현장읽기] 114주년 세계노동절의 의미 찾기
2004-05-13 09:01 | VIEW : 218
 

[현장읽기] 114주년 세계노동절의 의미 찾기

 

현장의 분노와 희망을 조직하라

 


1886년 5월 1일 헤이마킷 광장에서 8시간 노동제의 쟁취를 위해 싸웠던 미국노동자의 피로 시작된 노동절의 역사는 백 여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전세계 노동자의 희생과 피로 지켜져 왔다. 군사정권과 자본에 의해 ‘노동자’라는 이름마저 잃어버려야했던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7년째 되는 94년, ‘어용노총해체와 민주노총건설’이라는 함성과 함께 쟁취된 ‘노동자의 날’은 이후 해마다 자본과 정권에 맞서 한해 투쟁을 가름하는 노동자 투쟁을 결의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탈계급화 흐름들을 경계하라


하지만 최근 들어 노동절이 기념행사 위주로 치러지면서 관성화 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민주노총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절을 표방하고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축하하는 축제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더욱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노동절 포스터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진과 표어에 대한 거부감이나, 특별한 긴장과 마찰없이 진행되었다는 표면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비판의 핵심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행태와 난무하는 정치적 구호간의 괴리, 향후 타협적이고 합의주의적 방향성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면서도 고 박일수 열사분신투쟁에서 보여준 비정규직 사내하청노조를 탄압한 현대중공업노조 감싸 돌기, 지역차원에서 별 탈 없이 해결되기를 원하다가 형식적인 분신대책위의 합의로 일단락 지은 비개입적 입장, 그뿐 아니라 ‘피해최소화’의 기조에 따라 투항한 외환카드 파업의 경우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현장의 불신과 비판을 크게 만들었다. 또한 1백 60일이 넘어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해결하겠다’는 애초의 의지와는 달리 민주노총 깃발만 나부끼고 있는 명동성당 농성장을 보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이날의 구호가 무색할 정도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로 진입하면서 열려진 진보정치의 가능성이라는 흐름속에서 민주노총의 전략변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미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총선 직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면 민주노총의 투쟁방식도 불가피하게 바뀔 수 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가시화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의 변화가 이뤄져야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고민하는 방향성이 대화와 타협, 노사협조주의 기조의 본격화라는 데 있다.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사안일 뿐이며,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으로 이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당과 대중운동과의 유기적 결합이다. 민주노동당 역시 여러 가지 주요 쟁점들에 대한 접근방향으로 대중운동과 원내활동의 연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과 공조체제를 가져가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이것이 곧 노동운동이 제도권내로 흡수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절이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대한 축하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는 ‘의회주의’에 대한 정파적 견해차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자리역할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덩달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체제내부로 진입하려는 것에 대한 경각성있는 문제제기여야 할 것이다. 부단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의 힘은 상층 지도부의 합의와 타협에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현장으로부터 솟구쳐오르는 분노와 희망을 조직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축제가 되기 위한 조건


노동절은 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노동자가 단결과 연대를 약속하는 시간이다. 노동절의 이런 근본 정신에 맞게, 제기되고 있는 ‘노동절의 관성화’라는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정치적 구호에 머물지 않고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며 일상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돼야 장애인,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이름은 서로 달라도 차별받고 억압받는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온 몸 다 바쳐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노동절이 진정한 하나의 축제이자 해방의 공간의 공간으로 자리 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학교에서 열린 4·30 노동절 전야제에서 김주익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조합원이 한 말을 떠올려본다. “동지들 어쩌면 ‘노동자는 하나다’란 구호는 거짓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투쟁 너무나도 외롭게 싸워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쟁과정에서 저희 하청노조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우리 노동조합 가장 선두에서 피터지게 싸울테니 동지들은 그 뒤만 지켜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지들 그 약속 우리 스스로도 지키지 못했고 동지들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무한히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축제는 함께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노동절이 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한 기회는 아직 무한히 남아있다.   


편집위원 facera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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