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호 [학술동향] 『모색』2호
2003-04-05 09:18 | VIEW : 3
 
158호 [학술동향] 『모색』2호
유학, 선진학문과 식민화에서 갈등하기

권희철 편집위원





『모색』의 두 번째 초점은 ‘유학’이다. 그러고 보니 유학이야말로 가렵지만 긁지 못했던 등언저리와 같다. 제대로 긁어 속마저 후련한지는 나중 문제이고, 일단 유학에 대해 생각해보자. 유학은 나의 꿈을 넘어 너의 꿈이기도 하니 아주 보편적이고, 따라서 절대적인 잣대이며 가치이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부인하기 힘든 사실. 이럴 때 유학은 보편적인 욕망이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학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흔치 않다. 그것은 물을 수 없는, 괄호 안에 갇힌 문제로 있다. 유학에 관하여 넘치는 진술들은 대개 그 경험과 스킬들이다.

그러나 유‘학’도 결국엔 공부의 한 갈래일 뿐이니, 이런 사태는 공부론이 없는 공부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공부의 이유와 가치는 묻지 않고, 그 결과와 방도만을 따지곤 한다. 이는 오늘날의 신지식인론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사태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나의 ‘현상’으로 도식화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지식인론은 단지 90년대 이후의 문제만은 아니다. 멀리 보면 해방 전후, 가깝게 보면 군사독재 시기부터 줄곧 이어져 내려온 같은 것에 붙인 다른 이름은 아니던가. 그러니까 우리에게 공부란 애초부터 출세의 한 방편이었다는 것. 따라서 이 집단적, 역사적 무의식의 켜켜이 쌓인 주름들을 세밀한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식의 식민화와 학문의 돌파구 사이에서」란 글에서 오창은은 “종속성을 자생성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을 역설하는 다소 선언적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인터뷰와 각종 자료 등을 통해 유학의 문제를 생생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의 결론은 거칠어 보인다. 유학이 집단적으로 내면화된 배경, 학문 종속성을 만드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정치한 진단이 아쉽다.
사실 모색을 ‘학문후속세대론’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진지한 성찰 속에서 개념화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학문후속세대론이란 이름은 다른 지면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언표가 되었다. 그러나 ‘후속’은 일종의 보호장치가 아닐까. 오히려 ‘단절’이 그 취지에 걸맞은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바슐라르와 알튀세르가 왜 새로움의 조건으로 단절을 언급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호한용의 말을 빌려 “살아있다는 감각”을 쉽게 느낄 수 없는 이유, 그리고 특집과 기획을 제외한 나머지 꼭지에서 새로운 지식의 면모를 별반 느낄 수 없는 것은 이런 문제설정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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