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호 [고전과 지금] 지그문트 프로이드 "아버지 없는 길"
2003-04-05 09:28 | VIEW : 5
 
160호 [고전과 지금] 지그문트 프로이드 "아버지 없는 길"

위에 선 정신분석학

홍준기 / 경희대 강사, 홍준기 정신분석연구소장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탄생의 토양은 히스테리였다. 히스테리의 치료로부터 정신분석학이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분석학은 이론과 실천의 두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대화치료’(talking cure)라는 표현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육체적, 생물학적 결함 혹은 퇴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 했던 과학주의적, 정신의학적 견해와 처음부터 대립했다.

확립된 지식, 그리고 지식에 근거한 권력을 바탕으로 치료자와 환자와의 관계를 일종의 ‘주인’과 ‘노예’(라캉, 헤겔)의 관계로 설정했던 과학주의적, 정신의학적 치료관행과 달리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자의 “전대미문의 메시지”(루시앵 이스라엘)를 청취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수행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윤리적인’ 임상이론을 수립했다. 히스테리의 치료라는 관심으로 시작되었지만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좁은 의미의 임상이론을 넘어선다.

정신분석학은 세 차원을 갖고 있다. 정신분석적 경험, 임상이론, 메타심리학. 이 세 가지 차원은 서로 맞물려 있는데, 특히 메타심리학적 차원에서 정신분석학은 ‘실용주의적’ 치료 기법의 연구를 넘어서며, 인간과 세계에 대해 포괄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요컨대 메타심리학적 차원에서 정신분석학은 ‘새로운’ 철학이다.니체, 맑스와 더불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현대 사상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라캉과 알튀세가 상세히 논의한 바 있듯이 프로이트 이론의 혁명성은 ‘의식중심주의’와 ‘경험주의’―독단적 형이상학과 과학주의―라는 두 개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알튀세가 『프로이트와 라캉』에서 말했듯이 프로이트는 이데올로기적 토양을 극복하고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연 ‘아버지 없는 사생아’였다. 과거에는 없던 개념들을 새롭게 창조해야 했다는 이론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정신분석학 이론을 사회적, 문화적 실천의 차원으로 구체적으로 확대시켰다는 실천적 측면에서 프로이트는 아버지를 갖지 않는 아들이었고 혁명가였다.인문 사회과학, 문화 예술, 정신의학 심리학 분야를 총 망라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국내에서 깊이 있게 연구된 바는 없지만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은 맑스주의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학문적으로 결합시키려는 시도 이외에 다름 아니다. 특히 프랑스 현대철학은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학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정신분석학에 대한 공부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프랑스 현대철학의 계보를 정신분석학 수용의 관점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메를로-퐁티, 리쾨르, 드 왈랭스 같은 정신분석학에 강하게 영향받은 현상학, 푸코, 들뢰즈와 같이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정신분석학 이론을 수립하려는 학자들(예컨대 푸코는 자신의 『성의 역사』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대체하는 ‘탈정신분석학적 정신분석’ 저서로 인정받기를 암묵적으로 희망하고 있으며,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있는 들뢰즈는 가타리와 더불어 빌헬름 라이히 류의 정신분석학적 전통을 따른다.)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학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지만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는 데리다는 크게 본다면 라캉 이론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맑시즘(알튀세, 발리바), 포스트맑시즘(바디우, 지젝, 라클라우), 여성학(크리스테바, 미첼), 문화, 예술, 영화(고다르) 분야에 이르기까지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받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의 정신분석학 수용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쉽게 정리된’ 이차문헌이 아니라 원문을 중심으로 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서만 물질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어도 아직도 정신적으로 낙후한 상황에 놓여있는 한국의 문화적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신분석학은 개인과 사회 속에서의 억압 없는 혹은 억압이 극소화된 ‘승화된’ 관계를 지향하는 ‘윤리적’ 학문이다. 필자는 이를 ‘아버지 없는 길’(미첼리히), 혹은 ‘상징적 아버지’(라캉)이라는 개념으로써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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