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호 [학술단평] 『파스칼적 명상』피에르 부르디외, 동문선
2003-04-05 09:35 | VIEW : 8
 
161호 [학술단평] 『파스칼적 명상』피에르 부르디외, 동문선
형철학과의 단절, 학구적 이성과 거리두기

이희랑 편집위원


부르디외, 그가 굳이 마르크스가 아닌 파스칼을 택한 이유가 궁금한가. 사실 궁금할 것도 없다. 부르디외에게 이미 철학은 오래 전부터 종결된 문제이다. 그의 작업은 더 이상 철학적이기를 거부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이기를 선호한다. 소위 지식인 혹은 학자라고 하는 자들의 학문적 생산행위는 구체적인 ‘현실’의 진지함들로부터 한껏 거리를 두고 즐기는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현실은 없고 다만 사유만 존재한다. 그는 철학이 일반이기를, 보편이기를 혹은 진리이기를 자처하는데 이미 넌더리가 나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그가 해온 고민은 인간 존재와 그 행위의 관계였으며, 그것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내는 것이었다. 인간의 존재 조건과 행위간의 관계 그리고 존재들간의 행위가 담고 있는 상징 메카니즘을 캐내는 것은 지휘자의 조직적 협력 없이 굴러가는 합창단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구조’로부터 파생된 ‘존재’가 어떻게 그의 조건을 배반해나가는를가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 답은 ‘구별짓기’라는 말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있다.그렇다면 그가 애써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피해가려고 하는 것은 세계관의 문제와 객관성의 문제 그리고 진리의 문제를 계급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그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일까. 오히려 그러한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인식론적 포장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 현실로부터의 ‘거리두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 그것은 철학이 ‘순수관념’이기를 조성하는 현 학구적 이성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거리두기의 배후에는 태생적으로 한계지워지는 ‘존재’의 조건과 오인메커니즘과 공모에 의해서 재생산되는 사회적 조건을 여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실 『파스칼적 명상』을 읽어나가는 우리는 ‘게임의 법칙’을 깨뜨리는 부르디외의 전략을 알고 싶다. 구체적인 싸움의 방법을 알고 싶은 것이다. ‘차이’가 힘이 된다는 말은 이제 철학만큼이나 신물나기는 마찬가지이다. ‘계급투쟁’을 대신하는 ‘구별짓기’ 혹은 ‘분류투쟁’ 으로서 차이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이제 부르디외는 거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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