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호 [고전과 지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사물 속 관계 응시하는
2003-04-05 09:41 | VIEW : 5
 
162호 [고전과 지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사물 속 관계 응시하는
구조인류학자의 시선


주경복 / 건국대 불문과 교수
  

20세기의 첫 세대가 시작한 1908년에 태어나서 21세기가 열린 오늘까지 프랑스에서 아마존의 밀림지대로 그리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세상 여기 저기를 찾아 살펴보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의 문화에 대해 사색해 왔다.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구조주의라는 짙은 색안경을 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구조주의는 사물의 겉을 보지 않고 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고성능 장치와 같다.흔히 서구문명 사회에서 펼쳐온 문화는 고상하고, 슬픈 열대의 밀림지대나 극지방의 얼음 벌판에서 야생인이나 에스키모인들이 보여주는 문화는 야만적이어서 그 내용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른바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의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후진’ 사회나 ‘야만’ 사회의 이국적인 문화를 찾아가 동정 어린 시선으로 이것저것 엿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면서 행복해 하곤 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가 볼 때, 겉으로 나타나는 문화의 차이는 단순한 다양성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문화는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하는 우열의 감정은 그것을 느끼는 주체가 어느 문화구조에 익숙해 있느냐에 따른 것일 뿐이다.

  각 문화는 모두 나름대로의 사회적 필요에 따라 그에 알맞은 형식으로 구조화되었다. 구조는 밖의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오직 내부에서 구성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짜여지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열대 밀림 지대의 야생인들이 얼굴에 이상야릇한 것을 바르고 칠을 하는 것과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은 각 사회의 조건에서 나름대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해 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며 근본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 문화는 과거의 아날로그 문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 레비-스트로스의 시선에 따르자면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단지, 시대적 필요에 따른 겉모습의 변화일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문화의 패러다임을 접하면서 무엇인가 인간의 삶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당황하거나 불안해하곤 한다. 또한 가급적 빨리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위해 과거의 것을 마구 버리는 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의 눈으로 본다면 그런 모든 것들이 모두 경박한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계절이 변하면 그 철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듯이 잠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문화의 옷을 갈아입는 것인데 왜 그렇게 야단법석들일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기술적 차이가 크다고 하여 인간의 삶 자체가 그 의미를 달리하겠는가. 주어진 조건에서 차분하게 적절한 옷을 마련해 입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겉모습에 나타나는 차이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구조주의자들이 그렇듯이 레비-스트로스도 구조의 기초를 ‘랑그(langue)’에 두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의 ‘빠롤(parole)’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자들이 추상적인 구조 개념에 매몰되는 동안 객관적 현실을 많이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랑그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빠롤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는 빠롤의 다양성을 제대로 파악해 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 담론을 천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구조주의가 지나치게 랑그 중심의 인식과 방법론에 기울었다는 비판은 타당하다.또한 구조주의가 자의반 타의반 실존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지나친 부정의식을 낳아 과도한 반인간주의에 기울었던 사실도 이제는 반성할 대목이다. 결국 사르트르 계열에서 비난했듯이 왜 구조주의는 현실변혁을 위해 ‘거리에 나서지 않는갗라는 물음과 도전을 회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개의 사상이 그렇듯이 그가 심화해 온 구조주의도 적지 않은 단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제는 다소 진부한 인상마저 준다. 그렇더라도 20세기를 풍미했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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