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호 [사회기획] 진단, 복수의 사회
2005-04-07 04:13 | VIEW : 40
 




진단, 복수의 사회





공장굴뚝 연기에 상처입은 자연이 시시각각 인간을 공격한다고 난리다. 자연의 복수다. 익숙한 이야기라고? 인간을 한낱 기계부품 쯤으로 생각해 온 사회적 선택에 상처입은 개인들의 복수는 어떤가. 하루 36명, 1분 30초에 한 명씩 자살을 하고,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아버지가 딸을 폭행하고 있다. 개인이 사회에 복수하고 있다. 개인들은 죽음으로, 폭력으로 사회를 향한 복수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자기파괴유전자의 위험을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다. 무엇이 개인을 복수의 신으로 만드는가. 이번 ‘복수시리즈’에서는 오늘날 사회를 과거의 거울로 들여다봄으로써, 시대편의주의적 선택들이 가져 온 치명적 복수를 진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철호 /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복수는 금기되었다. 신의 섭리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로의 진보와 이의 산물인 국가는 법을 동원하여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여 국가만이 이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사적인 복수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마르크스가 갈파했듯이 국가는 특정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권력기관이며, 국가의 통치는 적대적인 여러 계급의 저항을 통제하고 스스로의 권익에 필요한 질서를 유지·강화한다. 다수인 피지배계급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부단히 저항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투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고의 형태는 지배계급의 교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여 보편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다음은 제도의 작동 방향을 바꾸거나 제도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이를 테면 교육불평등이 문제라고 한다면 특히 그 불평등의 근원이 경제적 차이에 의한 것이라면, 무상교육의 실시를 통해 불평등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기회와 과정 그리고 결과의 모든 경로에서 불평등이 확산되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교육제도를 바꾸는데 이르지 못한 개인의 선택은 순응, 체념, 그리고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복수의 형태로 나타난다.




억압받은 개인들의 탈출 ‘패거리’


교육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사회를 민주적이거나 또는 공동체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하기에 공교육 체제를 확립하고 교육의 기회와 교육여건에서 차이를 줄여 나가는 것이 대부분 사회의 모습이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우리 교육은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교육으로 인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근대는 자생적 발전 과정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전쟁, 군정과 같은 외부적인 변동에 의해 진행되었다. 서양에서 근대화란 봉건적 질서로부터 벗어나 개인이 자립적인 주체로서 정립하거나 공화국의 이상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근대화의 과정에서 한국은 개인의 이념도 공화국의 이념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식민통치의 역사 그리고 군부독재가 주도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개인은 철저하게 국가를 가장한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봉쇄되어 버렸다. 하여 억압적인 사회에 의해 통제되는 개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두를 적대시하거나 잘게 나누어진 집단을 통하여 이익을 지켜 나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가족은 가족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교육비를 투자한다. 아이의 혀를 자르는 학대가 감행되는가 하면, 도우미엄마-기러기아빠 등 스스로 가족해체를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학벌사회는 학교를 민주주의적인 소양을 가진 공동체 시민이 자라나는 곳이 아니라 입시 경쟁의 소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제 학교는 오직 경쟁에서의 승리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살육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 경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옆자리의 친구가 경쟁자일 뿐이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교육 활동을 하는 교사는 방해가 된다. 교사와 아이들과의 관계 또한 지식이라는 상품의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관계로만 규정된다. 한정된 시간에 기반을 둔 암기 경쟁에서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학생에 대한 인권 침해와 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만 끝나면 사교육기관으로 달려가는 아이들로 인해 공동체 활동이나 방과후 활동 상담활동 담임활동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학교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해진 교과 수업과 긴 무력감이다.




단순한 일탈이 아닌 사회적 복수


이제 학벌사회의 폐단으로만 지적되어 왔던 학생, 교사, 가족의 증후들은 사회 전반에 대한 복수의 형태로 가시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소수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질주하다가도 상품화된 교육 속에서 무력해진 자신을 발견하고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살, 또는 완벽한 무관심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끝간 데 없이 밀린 개인들에게 복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학벌사회를 근원적으로 혁파하지 못하는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은 없다. 학력에 의한 서열체제에 편입되느냐 아니면 벗어나느냐만 있을 뿐이다. 성공적으로 진입한 소수는 부와 권력을 전리품으로 획득한다. 다수의 성공하지 못한 현실세계의 질서에 순응한 실패자들은 열등인간이라는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순응하려고 했던 그들 중의 일부가 선택하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분노의 표출은 자기파괴를 통한 복수로서의 자살 또는 돌발적이거나 체화되어버린 폭력이다. 빈곤으로 인한 교육기회와 과정의 불평등으로 인해 대다수의 빈곤계층 아이들은 승리자를 연호하는 관객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관객이기를 거부한 이들의 복수 양상은 또 다른 기준에 의한 서열을 만들거나 벗어나는 것이다. 하여 패거리를 형성하고, 패거리 안에서 새로운 서열을 만드는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해 가기도 한다.


학벌사회로 인한 교육 불평등을 극복하는 노력은 교육적인 대책과 사회적인 대책의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적으로는 교육소외의 극복, 교육여건의 균질화 등과 함께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교육의 공공성을 되찾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숫자로 표시된 성적으로 환원시켜버리는 학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분쇄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경제적인 불평등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빈곤 탈출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학벌에 의한 차별이 ‘금기’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