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호 [사설 2] 북풍, 낭만적 통일관의 반성 계기로
 
 

105호 [사설 2]

북풍, 낭만적 통일관의 반성 계기로


 

도대체 북풍이 어찌나 세차게 몰아치는지 눈을 뜰 수가 없다. 어떠한 눈 밝은 이도 어떻게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말도 들리고, 안기부 자체의 공작일 따름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청와대의 전(前)주인이 몰랐을 리 없다는 소문도 있고, 무슨 별 이름같은 것이 신문지상을 수놓기도 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바람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 지 묘연하기만 하다. 남과 북 사이에, 예측 가능하지만 너무도 위험스럽게만 보이는, ‘이상한 거러가 이뤄질 수 있다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감싸고 있는 어두운 장막이 날아가지 않는 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분단 체제를 배경으로 비상식적인 일들이 워낙 많이 자행되기는 했지만, 이번 북풍 때처럼 어리둥절한 적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안기부의 수장이었던 사람이 자살도 제대로 못할 수준이니까 시끄러워진 것’이라는 농담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수구세력의 저항’이든 ‘정치보복적 수사’이든 분명한 점이 하나 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해 낭만적 환상을 가져왔던 진보 세력의 일각은 냉엄한 자기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북풍’에 대해 보수정권 일방의 조작 사건으로 규정, 반통일 세력과 북한의 선명한 대비로 설명하던 방식이 오류였음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기득권 세력도, 남한의 기득권 세력처럼, 손아귀에 쥔 칼자루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뒷거래를 감행한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여기에 대한 반성이 동반될 때만이 ‘국가 안보’를 빌미로 ‘정권 안보’를 챙기거나 ‘대권 도전’이 가능해지는 상황에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종결 양상으로 치닫던 국면이 자살 소동을 계기로 다시 여야간 사활을 건 정쟁으로 번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힘을 얻기 위해서도 반성은 선행되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정치권은 부패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 아니라 민중 주도 통일운동의 물꼬를 어떻게 트는가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북풍을 대권 놀음의 카드로 활용하는 동안 진보진영의 일각은 특정 이론에 얽매여 남북관계를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진보진영 전체는 도매금으로 매도를 당해 발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주장의 근거인 민중들에게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번 북풍을 계기로 진보 진영에서는 낭만적 감성에서 탈피, 현실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진보진영에 북풍이 세차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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