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호 [사설 2] 현실성 있는 제도 개혁이 되어야
 
 

108호 [사설 2]

현실성 있는 제도 개혁이 되어야

 

그냥 한 번 해 보는 게 있다. 지나가는 예쁜 여자한테 말 걸어 보기, 컴퓨터 지뢰찾기에서 계산이 안될 때 대충 눌러 보기 등등. 성공하면 좋고, 안 돼도 재미가 있다. 설마하니 말 걸었다고 여자에게 따귀를 맞는다거나 게임의 지뢰가 폭파한다고 사람이 죽는다거나 할까. 그래서 그냥 한 번 해 보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도를 정비하고, 사람들을 이에 따르게 할 경우엔 문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제도는 사람을 관리하고 이에 따라 책임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무시한 제도 개혁이 '그냥 한 번 해 보는 것' 같을 때에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래도 대학원 교학부가 지난 학기 박사 학위 논문을 받으며 요구했던 것은 그냥 넘어갈만 하다. 너무 우스운 일이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도 다 끝났을 뿐 아니라 몇 백권의 박사 학위 논문을 다 찍어 이제 교학부에 제출하는 원생에게 무슨 서명을 요구했다. "박사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출판하겠습니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하라는 것이다. 아니, 모든 게 끝난 마당에 그러한 서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출판이 안 되면 박사 학위를 취소할 것인가. 또한 학위 제출자들은 출판하기 싫어서 출판을 하지 않는 것인가. '눈 가리고 아웅'이 어처구니가 없을 때는 조소가 나올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 논문자격 기준을 조정한 것은 현실성을 갖고 있기에 사태의 심각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박사학위 수여 연구지수가 2백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개정조항을 보자. 교외 학회/저널 1백점, 교내연구소 발간 학술지 50점, 학생회 연구논집이 30점이다. 먼저 교내연구소 발간 학술지의 경우, 대학원생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 몇 개나 되는가. 대부분 애초부터 그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다. 교외 학회 혹은 유명 저널에의 경우도 인문사회계열의 입장에선 현실성이 극히 희박하다. 외국 유학을 갔다 오거나 강사급 정도는 되어야 게재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발표가 가능할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으며, 그런 풍토는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제도 개혁은 "대학원의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보다는 옥죄는 구실에 중점이 놓일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제도가 실시됐을 경우, 박사 과정생들을 밖으로만 내몰아 학내에 기반한 연구 단위의 몰락을 유도할 것이다. 즉자적인 제도 개혁을 통해 교내 연구소 대부분이 보이는 폐쇄성이 개방되기는 요원하고, 학술연구단체협의회 등으로 대표되는 원생들의 자생적 연구 단위는 기반을 잃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결과가 과연 애초 의도했던 바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데 감수할 만한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대학원위원회의 제도 개혁의 근본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실 상황을 보다 면밀히 고려하길 요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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