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호 [사설 2] 한자병용과 김대중 정권 1년
 
 

120호 [사설 2]

한자병용과 김대중 정권 1년

 

김대중 정권이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왔다. 문화관광부가 내놓은 한자병용정책. 지난 50년간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문자사용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조치라나. 혹은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다듬을 수 있는 한자병용이라나. 아무튼 납득하기 힘든 온갖 수사구를 통해 한자병용정책을 미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는 관광객을 더욱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도로표지판을 한자병용으로 바꿔야 한다나. 어찌되었든 한 겨레의 문화정체성을 반영하는 어문정책의 중요성에 비해 그 논리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문화관광부의 한자병용정책은 문제점투성이이다. 몇가지를 지적해보자. 우선, 졸속행정을 들 수 있다. 한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 ‘국민의 정부’라면 국민의 이익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정부가 취해온 태도는 이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국민의 이익보다는 윗사람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지 않았던가. 문화관광부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초 “김대통령의 확고한 어문정책”이라고 당당하게 떠들어댔으면 끝까지 소신있게 떠들어대야지, 지금은 여론이 불리해졌다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정부의 정책이 어디로 표류할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의 실정인 셈이다. 단지 ‘버티기 작전’에만 여념이 없다. “버텨야 산다.”

다음으로, 부처간 이기주의를 들 수 있다. 이번 한자병용정책은 문화관광부의 작품이다. 아무런 부처간의 사전조율없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여론수렴없이 강행된 작품이다. 배짱좋은 문화관광부의 작품이라 할까. 오히려 행정자치부는 “실효성이 없다”면서 한자병용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교육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문화관광부는 한자병용정책을 국민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믿어야 산다.” 부처간에도 신뢰하지 못하는 작품을 우리에게 믿으라고. 아무튼 한자병용정책은 사전조율없이 당당하게 강행된 만큼이나 반론없이 사그러들고 있다.

‘쇼’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인 듯 싶다. 서당훈장이 되려는 김대통령의 ‘깜짝쇼’라 할까. 김대통령의 쇼맨쉽도 무르익은 듯 싶다. 출범한 지 이제 1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지난 1년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진척된 것이 없다. ‘개혁’의 ‘ㄿ짜에도 이르지 못한 듯 싶다. 그러니 속이 얼마나 탔을까. 그래도 아무리 성과가 없다손 해도 그렇지, 관광유치를 위해 한자병용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발상은 너무 우습다.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요즈음 웃길려면 목숨을 걸고 웃겨야 한다. 썰렁맨으로 왕따당하기 싫으면 말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비장의 카드가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왕따였으니까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1년을 귀감으로 삼았으면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으면 한다. 도로표지판만 뻔지르하다고 관광객이 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을 더욱 ‘찡’하게 하는 것은 풍성한 마음의 표지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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