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사설] 대학의 위기와 한국 사회의 위기
 
 

157호 [사설]

대학의 위기와 한국 사회의 위기

 

요즘처럼 ‘위기’라는 말이 이 사회에 만연하는 때도 드문 것 같다. 이를테면, ‘한국 인문학의 위기’, ‘서울대의 위기’, ‘한국 경제 위기’, ‘교육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정권의 위기’ 등이 그것들인데, 이런 위기론은 너무나 많아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앞날이 위기만이 존재하고 있는 절망적 상태인가하는 당혹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들 중 최근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된 한국 대학 교육의 위기,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해서 ‘한국 대학의 위기’라는 담론일 것이다. 이는 대학의 위기라는 사안이 연구자로서 대학원생들의 현실과 가장 맞닿아 있다는 원초적 문제 이외에, 대학이 한국 사회 구조에서 차지하고 있는 물적,심적 비중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교육의 위기’라는 문제가 부각되면서, 얼마전 그 ‘서울대’의 일단의 교수들이 총장에 대하여 기초학문을 도외시하는 정책을 유지할 경우 퇴진운동까지 고려하겠다는 성명서를 제출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이것은 한국의 대학 교육이 취업과 직결된 학문들, 즉 소위 ‘실용학문’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치중되는 데 대한 견제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초등에서 중등 수준의 교육 기관이 평균적인 사회인을 공급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면, 이에 반해 대학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에서의 고급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가 운영되는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의 차원에서 고급 인력 충원과 학문적 산물을 만들어 내는 목적을 갖는다. 이것은 공학과 관련된 전문 교육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년제 대학에서 공학 전공 교육을 실시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미국의 의대가 대학원 형식으로 운영되고, 한국에서는 본과 이전에 예과의 과정을 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대상이 공학이건 경영학이건 의학이건, 모든 것들이 사회를 이루는 한 톱니바퀴를 구성하는 목적에 따른 것이라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현재 한국의 대학 교육은 이런 기본적인 부분들을 드러나는 결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요없다’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낳게될 결과는 초중등 교육기관의 현상태를 볼 때 무엇보다 명확하다. 한국의 초중등 교육은 평균적인 사회인의 양성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채,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체제가 재편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학교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리고 ‘전문갗가 아닌 ‘전문적인 교육자’에 의한 교육을 통해 얼마나 완성된 하나의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얻느냐가 아니라, 대입을 위한 기술을 얼마나 획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낼 수 있는가가 초중등 교육의 관건이 된 상황에서, 입시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교육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버린 상황이고, 이것의 결과는 현재의 ‘학교붕괴 현상’이다.

이것은 대학교육이라고 별다를 수 없다. 대학 교육 역시 취업이라는 기준만을 따르게 될 경우 그에 따른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게 되고, 대학은 더 이상 한 사회의 머리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수 밖에 없다. 물론 대학이라는 틀 자체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어떤 측면에서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학이 책임졌어야 할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대체적인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것은 단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2003년 이후 대학정원이 입시생 수를 넘어서게 되면, 소위 ‘경쟁력’없는 대학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질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그동안 무작위적인 설립허가로 발생한 부실 대학을 정리하는 효과를 낳겠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대학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대학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는 자본주의적인 판단 기준만이 아니라, 진정한 국가의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기준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이 맞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지금의 상황이 ‘날이 아니라 ‘위기’라는 다소 희망적인(?) 가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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