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9.4 금 14:15
기획과학
209호 [학술기획] 학문간 소통으로서의 과학 ① 아인슈타인과 예술이 만났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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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승인 2006.02.26  14: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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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학술기획] 학문간 소통으로서의 과학 ① 아인슈타인과 예술이 만났을때
2005-03-13 17:55 | VIEW : 27
 

 





[학술기획] 학문간 소통으로서의 과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표 100주년을 맞아 과학에서의 그의 업적과
과학이론이 다른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다. 과학이 단순한 하나의
학문 영역이 아니라 인문·예술·사회 및 기타 학문 분야와 연계될 수 있는
‘학문의 허브’임을 시사하고자 한다.  우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예술·철학 분야에 미친 영향을 고찰해 보고 과학이 다른 학문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또한 오늘날 시도되는 인문학의 과학적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시도가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서 알아보자. <편집자 주>






글 싣는 차례 ① 아인슈타인과 예술이 만났을때
                     ② 인문과학의 과학적 수용

 

아인슈타인과 예술이 만났을때

김제완 / 과학문화진흥회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물리학자이면서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다. 그가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과 명성있는 예술가들을 제치고 20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그의 영향력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뿐 아니라 철학과 예술에서 숨쉬는 아인슈타인을 찾아보자.


그 중에서도 그의 가장 큰 영향력은 이 세상에 대한 ‘존재’의 형식을 송두리째 일깨워 준 데 있다. 세상만물과 인간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어울려 4차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1차원인 시간과 3차원인 공간이 각자 독립적인 것이 아닌 4차원인 시공(時空)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이라는 사고를 깨뜨리고, 시간과 시간,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공간과 공간이 서로가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상대론’을 도입함으로서 ‘존재’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상대론적 사고로의 전환



그것이 우리들의 사고를 얼마나 뒤흔들어 놓았는지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끝도 없는 그 옛날부터 끝도 없는 미래를 향하여 시간이 간다는 것이 뉴턴적인 우리의 시간 개념이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인간과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고 이를 초월하여 그 바깥에 존재한다. 그러나 무한의 바깥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그 역시 인간과 같이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을 흔히 쓰는데 시간이 물처럼, 어떤 실체가 흐르는 것인지. 아인슈타인은 이런 개념을 공간처럼 더 손에 잡히게 만들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시간이란 영원할 수도 있고, 시작과 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란 그런 시간을 초월하여 시간밖에 있는 그 어떤 ‘존재’라는 합리적인 사고를 시사하기도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사고를 바꾸고, 종교 역시 더 넓은 시각으로 이 우주를 바라보는 발전을 가져왔듯이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종교적 사고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예술을 사랑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음악을 좋아했으나 상대성 이론이 음악 자체에 깊은 영향은 미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음악과 달리 미술의 여러 곳에서는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우선 상대성이론의 영향은 마그레의 작품 <유리의 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부피가 없어질 뿐 아니라 소위 말하는 ‘트렐회전’ 효과에 의하여 뒷면이 보인다. <유리의 집>을 보면 인물의 앞 얼굴과 뒷머리가 함께 보인다. 초현실주의자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에서도 상대성 이론의 정지된 시간의 개념이 보인다. 움직임이 없는 죽은 듯한 해변에 죽은 시계가 나무에 걸려있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드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시간과 공간이 개별된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진 하나의 실체인 시공을 나타내고 있다.


초현실주의, 입체파 화가 작품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영향은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입체파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작가 지망생인 피카소가 예술의 도시 파리로 온다. 그는 몽마르트 언덕의 싸구려 아트리에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를 차린다. 이곳에는 아방가르드 성향의 문인, 화가 지망생들 그리고 4차원 기하학에 심취한 회계사 ‘프랑세’들이 모여들어 맥주와 짙은 담배연기 속에서 그들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입체파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아비뇽의 처녀들>이 탄생한다. 이 그림 속에서 오른쪽 두 번째 여인은 정면에서 본 영상인데도 코는 옆에서 본 것처럼 그러져 있고, 오른쪽 밑에 아프리카의 가면을 연상하게 하는 여인은 일반적으로 앉아 있을 수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맨 왼쪽의 아가씨는 옆모습인데도 눈은 앞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이 여인들의 가슴과 몸은 평판의 조합을 모은 것처럼 되어있다. <아비뇽의 처녀들> 전체에서 흐르는 느낌은 3차원적인 시각을 2차원인 그림에 담고 있다.


더 직접적인 영향은 달리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 <고차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Christ in hyper cube), 미국 뉴욕 소재 현대 미술박물관 소장>은 8개의 입방체로 되어 4차원 입방체의 3차원 단면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서로 비교하면 예수님이 못 박혀 있는 십자가는 4차원(입방체)을 3차원에 펼친 입방면이라는 것이 곧 수긍이 가리라 생각된다. 피카소의 <마라부인>의 경우 왼쪽에 그려져 있는 직육면체를 보자. 이 육면체가 아주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고, 그 변은 검은 칠을 한 선이라고 하자. 그림처럼 누가 손전등을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비추어 보면 육면체의 변들이 평면 위에 사영(射影)된 그림자로 보일 것 것이다. 입방체의 윗면은 전등으로부터 가까운 까닭에 더 확대되어 투사되면서 큰 사각형 속에 있을 것이다. 두 면을 이은 수직으로 된 변은 두 사각형의 꼭지점을 서로 잇는 선이 되어 그림처럼 사각형 속에 사각형으로 나타날 것이다. ‘3차원 입방체’의 면들이 2차원인 평면에 투사되어 사각형 속의 사각형이 되듯이 ‘4차원 입방체’의 3차원 사영(射影)은 큰 입방체 속의 작은 입방체로 나타날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 가운데 <마리부인>처럼 한쪽 얼굴에 눈 속에 눈이 있는 영상은 4차원의 3차원 투시도를 암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미술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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