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호 [주장2] 한총련 출범식을 바라보며
2003-03-09 00:16 | VIEW : 3
 
[주장2] 한총련 출범식을 바라보며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4일 한양대에서 실려나온 한 노동자의 주검 앞에서 우리는 전율했다. 설령 그가 한총련 출범식을 방해하려는 편이 보낸 프락치였음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전율의 강도는 상쇄되지 않는다. 노동자와 프락치.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가. 아마도 그는 아주 순진한 프락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의 한복판으로 스스로 물어서 찾아갔을 것인가.

강위원 한총련 의장은 사망이 알려진 직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우리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법적,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관련 학생들이 즉시 자진 출두하는 것으로 그 법적 책임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겠지만, 그가 말한 또다른 도의적 책임과 국가와 사회 일각이 요구하는 수준 사이에는 어쩐지 실로 막대한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짐작컨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은 한총련 해체 이외의 다른 무엇도 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총공세를 펼치겠다는 것이 이미 정해진 정부 방침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쪽이든 그 책임이 감수해야 할 것으로 한총련의 해체를 애초에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한총련이란 조직의 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발상일 테니까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총련 집행부는 과연 어떤 의도에서 법적 도의적 책임을 거론한 것일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그들이 말한 도의적 책임이란 것인데, 그것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여긴 것일까.

한총련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의 한총련을 진정 아끼는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받은 엄청난 충격이 한 사람의 죽음 자체에 놓여있지 않음을. 한 사람의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그 폭력의 배후가 비단 몇몇 학생의 지나친 폭력성에 국한돼 있다고 한다면 문제는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건이 단순한 폭력성을 넘어 도덕성의 타락이 가져온, 언제 벌어져도 벌어졌을 필연적 귀결로 인식되고 있다는 데 한총련으로선 씻을 수 없는 치명적 상태가 되고 있다.

지금껏 시가전을 방불케하는 시위현장에서 애꿎게 연신 콧물을 흘리면서도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저 어마어마한 전경과 정부의 힘에 맞서고 있는 학생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가 무엇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그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국민 모두는 전율한다. 그 상상은 거리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것보다 백배 천배 더 무서운 것임에 온몸을 떤다. 그렇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학생은 더이상 더 나빠질 게 없는 정부보다 훨씬 더 나쁘고 무섭다.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그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에서부터 한총련의 도의적 책임은 시작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