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호 [특집-쾌락] 쾌락은 게임속에서 세계를 창조한다

게임의 로그온과 현실의 로그오프

게임 속의 아이템 때문에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게임도중에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게임에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게임이 사람에게 분명 어떤 쾌락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게임이 제공하는 쾌락은 게임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말초적인 자극에서부터 고도의 심리적 만족까지. 쾌락 충족의 양극 사이에서 게임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이 쾌락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생산이다. 어떤 게임 속에서는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지고 애초에 정해져 있던 게임의 법칙들이 사용자의 손에 의해 뒤집어진다. 또 어떤 게임은 제시되는 일정한 목표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의 성취를 위해 새로운 가상의 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게임은 〈스타 크래프트〉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러한 실시간 게임은 사용자의 개입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실시간 게임은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가 수용자를 요구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용자를 요구한다. 또한 과거의 텍스트들이 가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러티브, 혹은 내부 인물과의 동일화를 통한 몰입에서 오는 쾌락을 벗어나, 게임은 사용자의 개입에 의한 변형과 전복이라는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쾌락을 제공한다. 사용자의 개입과 참여는 게임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사실, 영화의 화면과 음향은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게임의 그것보다 훨씬 현실에 가깝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게임에서 느끼는 현실성은 현실과 얼마나 유사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계획대로 변형과 제어가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과거 강세를 보였던 어드벤처 게임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등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드벤처의 경우 사용자는 정해진 해답을 찾아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 시뮬레이션의 경우 사용자에 따라 수많은 전술이 가능하다. 게다가 일부 게임에서 제공되는 지도 제작기를 사용 자신이 직접 지도를 제작해 다른 이용자들이 또 다른 법칙에 의해 게임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게임에서는 놀이의 룰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노력이 없다면 놀이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카이와(Caillois)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반면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의 경우 새로운 질서를 통해 새로운 가상 사회를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예다. 온라인 게임은 정해진 목적이 없다. 단지 목적은 살아가는 것, 아니 살아남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게임을 한다. 보다 원활한 삶의 유지를 위해서는 게임 속의 다른 존재와의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 이용자들은 새로운 가상 사회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다른 존재로 살아가기라는 욕망의 충족이 게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게임을 통한 쾌락의 추구는 자신과 사회를 파괴하는 약물에 의한 쾌락의 추구와는 달리 새로운 자신과 질서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사회와 질서는 그 변화의 칼끝을 현실로 들이밀고 있다. 또 게임을 통한 쾌락의 추구가 수반하는 효과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게임 세계로의 로그온이 절대로 현실 세계에서의 로그오프가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새롭게 전개될 두 세계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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