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특집-환상, 그 퇴행과 전복 사이] 환상 6, 여성학

신라영/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


환상 6, 여성학

한 레즈비언 커플이 있다. 영화감독인 조와 변호사인 아가사. 조는 영화를 만들고, 그의 애인이자 관객이며, 다른 한편 감독이기도 한 아가사는 함께 영화를 만들어간다. 조는 아가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화 속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편집하고 있다. 한 여자와 남자가 섹스를 하고 있고, 커텐 뒤에 숨은 소녀가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한 남자가 뛰어들어와 섹스를 하던 남자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 숨어있던 소녀는 방안에 있던 여자의 손을 잡고 함께 도망친다. 이는 영화 의 내용이다.

프로이드의 ‘기원 장면(primal scene)’은 소녀가 여자와 함께 도망치는 순간 뒤집어진다. 이성애주의적 틀 속에서 섹스의 결과로 안전하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으로부터 도망침으로서 이는 영화 속 영화 인물들, 영화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이자 관객인 조와 아가사, 이들 과정을 ‘실제’ 관객으로서 바라보는 우리들의 레즈비언 주체성을 가능케 한다.레즈비언 커플에게 이와 같은 환타지는 그것을 새로이 구성해냄으로서 이성애주의를 벗어난 자신들의 욕망과 관계를 확인하게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욕망의 표현이나 탐구가 허용돼 있지 않은 여성에게도 환타지는 전복적인 장으로서 기능한다. 현실에서 금기시된 욕망을 환타지를 통해 그려냄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알고 표출하게 되며, 그것은 자아에 대한 앎, 사랑과 연결된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고, 가부장적·이성애중심적 사회에 도전하도록 한다.

영화는 이러한 환타지를 시각화해 우리 눈앞에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재현양식이다. 그러나 이 재현장치는 대체로 남성들에 의해 소유돼 있기에 남성 환타지의 전유물로 사용되는 측면이 크다. 일례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남성 환타지(‘참으로’, ‘놀라운’ 상상력)를 재현해내고 있다. 그의 머리 속에서 모든 여성들은 ‘창녀’이며 동시에 ‘어머니’이다. 끊임없이 여성은 강간당하며, 그럼에도 따뜻하게 자신을 강간한 남성을 감싸안는다. 그의 최근작 <나쁜 남자>는 이러한 환타지의 결정판인데, 자신을 창녀로 만든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때, 남성의 환타지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현실을 그려내지도 않으며, 전복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기존의 남성중심적 성위계관계를 고착시키고 여성을 왜곡한다. 말 그대로 환타지 속의 여성이란 존재는 자신의 손상된 남성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공된 인물, 타자화된 대상일 뿐이다. 환타지는 차가운 현실 속에 있는 우리 삶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해주고, 차마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금의 모순을 벗어나도록, 변화시키도록 하는 힘을 갖는다. 그러나 위에서 보여지듯 누구에 의한, 무엇을 향한, 어떠한 방식의 환타지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타자를 배제하며 기존의 질서를 고착 혹은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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