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 [性혁명에서부터 비아그라까지] 우리시대의 性, 그 새로운 다양性

계몽주의와 性혁명을 넘어서

이상용 편집위원

파리를 휩쓴 68혁명을 지탱했던 이론은 두 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마오이즘이 구호로 사용되었지만, 이후 서구사회를 새롭게 움직인 것은 성의 해방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마르쿠제와 라이히의 책들이 새로이 번역되거나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오이디푸스>가 68혁명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읽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펠릭스 가타리는 자신의 만든 <연구>라는 잡지에서 계급 투쟁이 성의 투쟁으로 이행되는 시기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30년의 역사가 흘렀다. 우리 앞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동성애 담론을 비롯하여, 새로운 성해방론자들이 90년대 중반서부터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를 통한 성담론의 개방은 구성애씨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르렀고, 본격적인 성의 학습이 각 단체와 교육장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저널리즘을 띤 페미니즘 잡지의 발간을 비롯해 아카데믹한 여성주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책은 발에 밟힐 정도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과도기적인 계몽의 형태를 띠는 90년대 후반의 담론들은 유행은 만들었지만 삶으로 내려오지는 못했다. 물론 본격적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팥쥐들의 행진’이라는 제목으로 행해진 ’99 여성미술제, 충정로 한 켠에서 벌어진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를 비롯하여 새로운 성문화를 조성하려는 활발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것은 국지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20세기는 성혁명 혹은 성의 패러다임이 전세계를 휩쓴 시대였다. 종족 번식의 수단이던 섹스는 20세기에 들어 하나의 쾌락으로 자리잡는 동시에 종교 및 권력의 통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혁명의 그늘에는 에이즈(AIDS)라는 역풍이 동반되기도 했다.

  밀레니엄을 앞둔 지금의 판세는 `비아그라`라는 물적 토대의 등장으로 쾌락과 자유로움의 추구로 방향을 잡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전세계의 네티즌들이 손꼽았듯이 20세기 최고의 사건이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추문이라는 지적은 성문화의 물적 토대가 풍부해지는 것만큼 도덕적 자괴감 또한 증대되고 있음을 역으로 보여준다. 성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문화 영역에 있어서 올해만큼 `섹스`라는 단어가 많이 입에서 거론된 적도 드물다.

  작년에 시작된 만화가 이현세의 이적성 논쟁으로부터 시작하여, 미디어를 통한 구성애씨의 등장, 그리고 O양 비디오 파문, 영화

  <노랑머리>와 <거짓말>에 이은 영화사전심의 제도에 대한 논란은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성담론과 성문화의 지형도를 적나라하게 발가벗긴 한 해로 기록될 만 하다. 문제는 이 지형도가 보여준 어두운 구석들이다. 여전히 시리즈는 비디오 시장에서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부부관계를 행한 날을 달력에 표시하다가 이혼을 청구한 부인의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기도 했다. 어둡게만 규정된 욕망들이 서서히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보여주었듯이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규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사전심의제도는 새로운 검열로 자리매김하면서 수용자의 누릴 권리, 다시 말해 수용자의 쾌락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빼앗길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수용자의 문화 자체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없어서 못 팔았다는 와 지금 나돌고 있는 <거짓말>의 불법 테이프는 밤의 문화를 만들기에 충분한 호기심이다. 성의 어두운 일면을 한국사회 스스로가 즐기고 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의 성문화는 수많은 다양성이 한 곳에 들어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문화를 정초해 나가는데 거쳐야 할 적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는다. 한쪽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뚜렷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때론 그러한 행동이 다른 성차에는 억압적으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그래서 퀴어, 페미니즘, 젠더,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들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윤색되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문화의 뒤늦은 수용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애자들간의 결혼이 합법화되기도 하였지만, 우리에게는 공론화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20세기가 성혁명의 시대라면, 그 목록에서 제외되어야 할 실정이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것은 성에 대한 첨예한 관심이다. 미국 대통령의 스캔들에 미국 다음으로 언론에서 관심을 보인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자국의 현실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남의 일을 엿보는 이 기묘한 국가적 관음증을 어떻게 치료할지 난감해진다.

  여하튼 급진적인 성해방론자들은 현재의 틀을 어떻게 해서든지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혹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을 새롭게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가령 1880년대에는 선천성 매독이라는 신화가 널리 퍼져 부르주아들을 불안하게 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몇몇 남자들이 사이좋게 한 여자를 정부로 삼고 공동으로 생활비를 대주는 경우를 흔히 그 시대에는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공유하고 있는 그 정부가 자기들 이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이는 쾌락을 누리면서 동시에 죽음과 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방책이었다. 자크 르 코프의 지적에 따르면, 성의 억압이 더한 중세에는 사회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성적인 행동 양식은 서로 다르다는 사고방식을 널리 유포시켰다고 한다. 6세기 전반 아를르의 주교인 세제르는 한 설교에서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금욕을 지키지 않는 부부가 낳는 자식은 나병이나 간질에 걸리거나 마귀가 들리게 될 것”이라고.

  지금 세제르의 설교나 19세기말의 부르주아의 형태를 그대로 쫓을 이는 없지만 이러한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에서 손쉽게 용인되어 왔다. 얼마 전 모방송사의 `TV 움부즈맨`코너에서 본 것인데, 한 독자가 카메라 고발이라는 형태를 빌어 춤추는 주부들을 취재한 것을 꼬집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핵심을 좀 변형하여 말하자면, 개인의 춤출권리를 어떻게 방송이라는 공공의 이름으로 함부로 질나쁜 것으로 매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계몽이라는 이름아래 개인의 권리가 함부로 훼손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사전심의제도, 서갑숙 파문, 오양 비디오 사건 등 이 땅을 휩쓸고 간 사건들의 기본과제는 개인의 권리 인정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는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개인을 유린하거나 제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의 출발점이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듯, 각 객체성을 무시하는 관행은 새로운 세기에는 묻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문화의 피해자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양, 손숙, 주혜란, 서갑숙, 백지연 등은 사안은 다르지만 매스컴과 가부장적인 이 땅의 제도하에서 피해자 혹은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골은 여기서 한번 더 깊어진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미디어의 종사자이며,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지식 기반과 발언권을 누릴 수 있는 주체는 얼마나 될까. 문제는 표면화되지 않는 수많은 하위 주체들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하위주체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그들은 말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스피박이 덧붙이는 것은 그러므로 지식인들이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당위성을 가진 결론이지만, 그러나 <거짓말>의 사전심의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었듯 정작 수용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배제되어 있다. 이 논쟁에서 지식인들이 올바르게 하위 주체들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근심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이 운명과 대결하는 것 첫 관문을 지나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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