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 [생태주의와 대안사회] 생태학적 글쓰기

적색에서 녹색으로

이상용 편집위원

생태학적 글쓰기 혹은 녹색 문학은 전후 독일이나 60년대 서구문화 속에서 그 출발을 찾아 볼 수 있다. `시인의 임무는 숲을 지키는 것이라며 생태시를 선보인 미국의 게리스나이더나, 70년대 산성비로 숲의 죽음이 시작되자 이를 소재로 다뤘던 루드비히 피엔홀트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소설은 비교적 그 주제면에서 폭넓게 다룰 수 있는데, 판타지 문학류에도 속하는 어슐러 르귄이나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 등이 녹색을 이데올로기의 옷으로 선택한 대표적인 산문작가들이다.

  그러나 비평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태주의 문학이나 생태학적 글쓰기는 꽤 넓게 정의할 수 있는 범주다. 우리문학의 경우에서도 이문구를 비롯한 농촌 소설의 계보나 김지하의 생명사상이나 정현종의 초록에 집착하는 세계관 등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재독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시대적인 필연성이기도 한데, 80년대가 주도한 적색의 이념 시대를 지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산업화가 만든 병폐를 되돌아보는 녹색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 환경 생태 등의 주제를 내세운다고 해서 모두 `녹색문학`이고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문제다. 최근들어 활발히 개진된 녹색문학은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에 이르지 못하고, 소재주의의 차원에 머무르는 일면이 있다.

  사실 녹색문학이 가장 활발히 펼쳐지는 영역은 비평의 공간이다. 평론가로서는 김욱동의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이남호의 『녹색문학론』 등이 이미 상자된 바 있다. 이남호의 작업은 주로 김소월이나 오탁번, 박완서, 서정주와 같은 이들의 녹색 가치를 분석해 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김욱동은 외국과 한국의 작가들을 오가며 이론적 지형도를 펼치는데 주력한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지속적인 작업은 『녹색평론』의 주간인 김종철의 비평을 통해 이루어지는 추세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은 모두가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연의 언어를 그대로 누린다. 그것은 시적인 언어체계이다. 시인의 언어는 원래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며, 모든 시인은 인디언이고, 녹색인이다. 사유의 범주가 시에 머무는 아쉬움은 있지만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그는 녹색의 언어들을 끝없이 풀어낸다. 마치 간디의 물레처럼, 끝없이 시간을 감아 올리며 언어를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도하고 있다.

  녹색문학이 주는 경고는 벤야민을 인용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세대가 지금은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구름밖에 없는 시골 하늘 아래 서 있다. 이 구름 아래로, 파괴와 폭발의 싸움터에, 조그맣고 여린 인간의 육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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