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학내문제] 실험실 안전문제 진단
2004-11-03 08:14 | VIEW : 96
 





[학내문제] 실험실 안전문제 진단



누가 실험을 위험하게 만드나


 


참여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이공계 기피현상이 점차 확산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언론은 이 문제를 진학률이나 취업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기본적인 문제, 즉 지금도 실험실에서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의 수준은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논하기가 과분할 정도로 실험실의 ‘안전’ 문제조차 불안한 상황이다. 실험실은 발암성·독성화학물질, 폭발성이 있는 기계, 감전되면 즉사할 정도의 과전류 사용기기, 세균 등 위험물질이 널려있다. 이런 실험실에서 매일 실험하고 연구하고 있음에도 실험실 안전을 위한 법률·행정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1999년 9월의 서울대학원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폭발, 화학과 실험실 신경독가스 포스겐 누출사고에 이어 2000년 3월 원광대 무기화학실험실 폭발 등 대학원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작년 5월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로 아까운 젊은 연구자가 목숨을 거두기까지 했다. 언론을 통해 부각된 대형사고뿐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묻혀지는 작은 안전사고들까지 보탠다면 대학원 실험실은 그야말로 안전의 사각지대인 것이다.

전반적인 안전시스템 구축돼야
그렇다면 우리학교의 실험실은 과연 안전한가. 지난 7-8일 이틀동안 대학원 신문사에서 공학, 약학, 자연계열 원우 중 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설문조사결과, 실험실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원우는 27.4%에 불과했다. 그리고 실제 응답자중 9명이라는 적지 않은 원우가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학과의 한 원우는 위험유해물질이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실험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이를 개인의 책임이나 혹은 안전불감증 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문제는 대학원내의 실험 및 연구활동의 구조가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안전을 무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위험을 알면서도 실험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안전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려면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원 실험실 예산의 대부분이 정부나 기업에서 수주해온 프로젝트 연구비에 의존하는데, 실험 결과를 되도록 빨리 얻어야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과중한 업무에 지쳐 안전문제나 폐기물 처리 등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학교의 적극적인 안전대책이나 체계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데 있다. 작년 9월 1일부터 시행된 실험실안전관리규정이 있긴 하나, 서울대나 KAIST가 계열이나 학과별 특성에 맞는 세부적인 사항을 담고 있는 규정과 비교해 본다면 형식 차리기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 대학의 대부분이 안전센터와 수십 명의 안전요원을 확보하고 있고 서울대 공과대학의 경우 역시 안전관리위원회를 별도로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학교의 경우는 안전관리책임자의 정이 해당 실험실의 담당(지도)교수로 되어 있어 일상적인 안전점검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앞서의 자체 설문조사에서 단지 12.9%의 원우만이 학교가 대학원생의 안전에 관한 대책이나 관심에 대해 노력하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답변이 나온 데에는 그 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안전문제, 특히 연구자와 각종 유해·위험물질이 공존하고 있는 실험실의 경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행히 우리학교의 경우 큰 사고는 지금까지 없었으나, 불행히 실험실 안전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나 대책이 부재한 상황이다. 타 대학원의 안타까운 사례를 보고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체계적이고 일상적인 안전교육실시와 세부적인 안전지침을 마련하여 사고를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보건안전 영역을 포함한 면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이를 기반으로 치명적인 위험물질 및 바이러스 등에 노출된 위험이 있는 연구자에 대한 정기적인 건강검진, 위험한 노후장비를 교체하고 실험실 시설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관리반 설치와 전문인력 확보, 연구자의 보험가입 및 보험료 지원하는 등의 전반적인 안전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좋은 연구자는 빵 구워내듯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실험실 안전문제가 우리학교 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아낌없는 재정지원이 이루어져 연구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훈 편집위원 facera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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