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원건물은 정문을 기준으로 할 때 좌우가 비대칭이다. 대학원건물에 마주 섰을 때 대학원총학생회와 대학원신문사가 있는 왼쪽편이 오른쪽편에 비해 짧다. 쉽게 말해 정문이 건물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분들에게는 ‘옛날’ 이야기가 되겠지만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학원생들을 위한 독립적인 연구공간은 없었다. 랩을 중심으로 연구공간이 형성되는 이공계열과 다르게 문과(인문·사회·교육)계열 대학원생들은 따로 있을만한 곳이 없었다. 그나마 지금의 중앙도서관 4층이 ‘대학원’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사연의 출발은 여기부터다.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독립된 연구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측과 싸우기 시작했고 총장실 점거까지 들어갔다. 지금도 대학원총학생회실 벽에 걸려있는 혈서는 이  때에 씌어진 것이다. 당시 대학원생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던 ‘비과협’(비상과대표자협의회)은 현재 대학원총학생회의 전신이 되었다.

  문제는 비과협과 학교측의 협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학교측은 비과협의 대학원 단독건물 요구를 수용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건물을 짓되 ‘차후에 증축’할 것을 약속했단다. 이것이 설계에 반영되었고 차후 증축분을 감안해 출입구를 낸 것이다. 하지만 예견했다시피 학교측은 이후에 증축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것이 대학원건물이 비대칭으로 남아있는 이유이다.
  재학중에 대학원건물의 단독사용을 오래 동안 요구해온 대학원총학생회와 대학본부측과의 합의문을 보면서 ‘과연 저 약속이 지켜질까’ 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도 과거의 이런 역사가 버젓이 그 증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서로에게 요구되는 것은 보다 합리적인 소통을 통해 약속이행의 증거들을 축적해 나가는 성찰적인 자세이다.

  주말이면 대학원을 찾을 때가 있다. 대학원 주변이 한동안의 공사를 끝내고 제법 운치를 느끼게 해주기에 선후배와 담소를 나눌 때면 으레 밖으로 나온다. 이런 변화가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대학원을 둘러싼 구성원들이 연구환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목표를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은 변화를 위해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도 해야 하고 우리 자신도 변화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원건물의 비대칭은 그 동안의 대학원생들과 대학측과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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