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훈 / 사회과학대학 국제관계학전공 교수



지난 달 경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장관회의에서 21개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은 최근 고유가 상황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에 합의하였다. APEC 에너지 장관회의는 격년제 개최가 원칙이나 최근 고유가 및 세계적인 원자재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APEC 차원의 공동보조 필요성이 높아져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개최된 것이다. 최근 중국의 빠른 에너지 소비 증가는 국제사회의 많은 우려를 가져오고 있다.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의 석유소비는 아태지역 소비의 66%, 그리고 세계 소비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석유소비 증가분의 40% 가까이가 중국의 소비증가로부터 왔다.
중국 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동북아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의 협력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석유소비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일본은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중동에 대한 지나친 석유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이제 막 뚜껑이 열린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은 수 십억 달러가 소요되는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을 자국에 유리한 위치로 건설되도록 하기 위해 체면을 가리지 않고 러시아에 매달려 왔다. 지난 03년 5월 후진타오 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중국측 루트를 보장하는 합의문을 작성했을 때만 해도 바람은 중국 쪽으로 부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일본 정부가 파이프라인 건설에 50억달러, 그리고 유전 개발에 2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자 지난 해말 러시아 정부는 생각을 바꿔, 바이칼호 근처의 타이쉐트에서 태평양 연안의 페레보즈나야까지 이어지는 4천2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태평양 연안 루트를 확정해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의 승리도 잠시뿐, 지난 4월 러시아 정부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새로운 파트너쉽을 강화하면서, 이 루트의 중간 지점인 중국과의 국경지역 도시 스코보로디노까지 파이프라인을 먼저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은 즉각 정부와 민간 대표단을 러시아에 보내는 등 크게 항의한 바 있다.
중국과 일본이 파이프라인 루트를 두고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이 러시아의 영향력은 향후 동북아시아의 정치ㆍ경제 구도를 좌우할 만큼 강화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간에  석유전쟁이 심화되는 것은 동북아의 장래에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심각한 에너지 부족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이득보다 손실을 보게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어떻게든 중국과 일본간의 갈등을 해소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APEC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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