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는 20세기의 지성으로 불리는 푸코,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 옥타비오 빠스 등에게 영향을 미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른바 ‘책에 대한 책쓰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실제로도 지독한 책벌레였다. 도서관에 사서로 취직한 이래 그는 20 여 년 동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직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책을 읽은 데다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서서히 시력을 잃게 되고, 인생의 후반부를 암흑에서 보내게 된다. 그는 실명한 뒤에는 구술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의 짧고 깔끔한 형식,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린 독특한 내용은 그의 실명과도 관계있는 듯 하다.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에서 살다가, 도서관에서 죽어 도서관에서 묻혔다’고 표현되는 보르헤스는 그의 소설집 <픽션들>에서 「바벨의 도서관」을 보여준다.

  끝없는 미로로 이루어진 바벨의 도서관의 책장은 알파벳의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이루어진 일정한 길이의 책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 나머지 모든 책들을 해석할 수 있는 완전한 책이 감추어져 있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우주를 상징한다. 끝없는 미로의 우주에서, 모든 지식을 압축한 한권의 완벽한 책은 신이다. 인간은 그 우주에서 신과 같은 그 완전한 책을 찾아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단서를 옮겨가며 끝없는 미로 속을 방황하는 불완전한 사서들이다. 즉,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영원’의 경지에 있는 우주의 도서관에서 끝내 충족되지 않는 지식에 발버둥치다 죽게 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영원의 경지에 있는 도서관은 “끝없이 순환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많은 이들은 ‘바벨’이라는 어원이 비롯된 카오스(chaos)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여기서 연결되는 듯한 니체(영겁의 회귀), 데리다(해체론), 들뢰즈(차이와 반복)의 이론을 생각하며, 보르헤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장님 사서의 이름을 호르헤 수사라고 지었다. 이것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추측에서 그 또한 보르헤스를 염두 해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정말로 이것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느끼게 되는 인간의 불완전성은 또한 이렇게 실재하는 것과 환상적인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오늘날의 미디어 이론을 비롯해 실재와 환상이 하나가 되고 있는 현대의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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