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만 처음인 것처럼 엉뚱하게 행동하며 웃음을 주는 코너가 있다. 개그맨들은 같은 상황마다 전에 없었던 일인 것처럼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이 장면을 꿈에서 본 것 같다며 저마다 ‘희한하네’를 외친다.
이것이 바로 ‘데자뷰’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봤음직한 이 현상은 우연히 길을 걷다 예전에 와본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어떤 일을 하다가 이 상황을 이미 꿈에서 겪은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어로 ‘이미(Deja) 보았다(vu)' 또는 ‘기시감(旣視感)’이라 불리우는 데자뷰는 신비한 느낌을 줘 마치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 같아 순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아직 시원스럽게 제시된 이론이나 설명이 없다. 우리 두뇌가 기억을 착각하거나 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보는 과학적 이론에서부터 환생과 같은 심령과학적 초자연 현상으로 풀이하는 것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나와 있을 따름이다.

데자뷰는 시각차에 따른 착각일지도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데자뷰 현상은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 시각에만 관련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처음 본 풍경을 이미 낯익은 것으로 느끼는 것은 ‘시간차’가 개입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처음 볼 때와 그 다음에 볼 때 시간차가 있는 것처럼 처음 본 풍경이 과거의 경험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각은 과연 이 ‘시간차’가 얼마나 나야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을 할까?
연구에 따르면 이 시간차는 0.025초라고 한다. 즉 이보다 더 짧은 시간차를 갖는 독립된 두 건의 사건은 우리가 보기엔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보다 긴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면 별개의 사건으로 구분을 한다는 것이다. 데자뷰 현상은 바로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착각 같은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어떤 이유로 양쪽 눈의 시각 정보가 0.025초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두뇌에 전달되면서 각각의 풍경을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 두뇌는 먼저 도착한 정보를 우선 해석한 뒤 기억 속에 저장한다. 그리고는 그 다음에 도착한 동일한 풍경에 대한 정보는 별개의 사건으로 간주, ‘방금 전엷 도착한 정보와 대조하여 ‘낯익은 곳’이라는 느낌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이 들어맞으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들이 성립되어야 한다. 먼저 도착한 시각 정보를 기억에 저장할 때 ‘언제’라는 시간 정보가 누락되어야 한다는 점, 통상 동시에 전달되는 두 눈의 시각 정보 전달 속도가 왜 데자뷰 현상에서는 차이가 나는가 하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른바 ‘축전지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한번 방전된 축전지가 다시 충전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 두뇌의 시각 정보 저장 시스템도 어떤 이유로 시신경에 ‘에러’가 발생한다면 이런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고, 그 결과 0.025초 이상의 간격이 벌어질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출신인 C.존슨이란 사람이 내놓은 가설로서, 아직까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이론적 근거나 검증 작업이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시간과 기억에 대한 환상
이밖에 데자뷰 현상에 대한 또 다른 과학적 설명으로는 일종의 기억장애로 보는 것이 있다. 즉, 처음 접하는 곳이라는 생각은 사실 틀린 것이고, 이전에 와 보거나 적어도 스쳐 지나간 곳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기억에 새겨두지 않았다가, 다시 접하게 된 시각 정보가 예전에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단편적인 기억을 자극하여 떠올린다는 얘기이다. 그런가 하면 처음 접하는 장소와 매우 비슷한 시각적 이미지를 가진 다른 곳의 기억이 중첩되면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는 설명도 있다. 이 경우에 전에 접한 비슷한 시각정보는 영화장면이나 책에서 본 사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데자뷰 현상에 관한 정확한 원인과 증상 규명은 아직까지 미지수로 남아있다. 데자뷰가 신경증과 관련되어 있음을 입증한 연구가 있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조사대상 즉 나이, 지능, 사회·경제적 지위, 뇌손상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시각의 오류로 인한 착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촉각 등 인간의 오감에서 느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간이 느끼는 ‘시간’은 우리의 기억과 함께 우리 내부의 시계에 맞춰 흘러간다. 어쩌면 데자뷰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인지도 모른다. 기사를 쓸수록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건 필자가 언젠가 이 기사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가 아닐까.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