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호/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대표 집행위원

 해방 60년, 분단 57년을 맞는 120만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실은 어떠한가.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의 강제징용 재일조선인 마을을 살리기 위한 전국적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65세대 202인의 재일조선인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식민시기 일본의 군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되었으며, 해방 이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져 왔다. 60년 동안 땀과 눈물로 일군 재일조선인들의 공동체가 모두의 무관심 속에 강제철거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1세들의 눈물어린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60년 동안 살아온 공동체에 대한 강제철거의 위협이 연일 계속되는 현실에 대해, 1차적으로 이 토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토지 확보 희망모금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이들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55억원이 필요한 상황이고 현재 한국의 희망 모금은 간신히 3억원을 넘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계의 시민들이 동참하고 있는 이 희망 모금 캠페인은 아마 한국사회가 잃어버렸던 양심을 되찾기 위한 최초의 노력이고 과거 한국사회 성장의 주춧돌이었던 이들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적 희생과 소외에 대한 반성이며, 나아가 과거 전범 행위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철저히 외면하는 일본에 대한 한국시민사회의 역사적 단죄이다. 이 양심의 불씨는 점차 전국으로 전세계로 노도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차별과 냉대를 넘어온 재일조선인
120만 재일조선인들이 오늘날 90년 가까이 일본의 차별과 배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공동체를 구성하며 정착할 수 있었던 힘은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동안 일본 전역에서 진행된 조선학교 민족교육의 값진 결실일 것이다. 차별국 내에서 그것도 전국적으로 우리말과 글, 그리고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조선학교 민족교육의 산실이 있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1941년 도쿄 올림픽을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에다가와 지역의 쓰레기 매립장에 내팽개쳐졌던 에다가와 재일조선인 공동체가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힘도 ‘에다가와 조선학교’라는 민족교육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59명이 다니는 이 조그만 조선학교도 최근 이시하라 도쿄도의 토지 반환 소송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일본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공동체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실을 한국사회에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국내 캠페인도 서서히 진행 중에 있다.
해방 60년을 맞는 동안 한국의 시민사회집단은 사회의 민주화 및 인권의 실현, 남북의 평화적 통일 실현, 인간다운 삶과 존엄성 유지를 위한 노동조건의 확보 및 노동기본권의 쟁취, 사회적 불평등 및 복지문제의 해소, 참교육의 실현, 지구적 환경 문제의 해결, 사회적 소수 문제 해결 등에 헌신적인 활동을 기울여왔으며, 양적 질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집단의 이러한 양적 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 시기 등 역사적 암흑기에 형성되었고 근현대사의 일주체였던 동북아 지역 350만 재외동포의 삶과 역사적 질곡,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속에서의 이들의 역사와 인권, 소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국권 상실기 어쩔 수 없이 정든 고국을 떠나 물설고 낯설은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 정착해야만 했고, 거주국 일본에서 또 분단된 모국에서 차별과 냉대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재일조선인. 우리 사회는 이제 이들의 역사적 절규, 역사적 현실에 분명한 답을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남아 있고,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통해 초라해질대로 초라해진 양심, 그 잃어버린 양심을 하나씩 소생시켜야 한다.

역사적 절규에 답을 주어야
해방 60년을 맞아 120만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묻기에 앞서, 우리 한국사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에 앞서 과거 동아시아 민중의 존엄을 짓밟고 그들에 남긴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대해 전범국 일본에 역사적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할 때이다. 나아가 재일조선인과의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인 모든 법과 제도를 송두리째 뜯어 고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재일조선인들의 모국인 남북이 분단된 상황을 하루빨리 해소하는 것만이 이들의 오랜 해원을 풀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한국사회는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