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혜 / 《트렌드코리아 2024》 공저자

[시간을 파는 한국사회]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만의 특징을 넘어 어느덧 전 세계에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인을 혁신과 창조의 선두 주자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시간’에 매몰된 강박증적인 삶, 타인의 관심사를 ‘시간’을 투자해서 습득하려는 현상, ‘절대 시간’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뒤쳐짐을 두려워해서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문제점도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 시간이란 어떤 의미이며, 제대로 시간을 쓰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시간전략 ② 행동을 바꾸는 짧은 시간, 넛지 ③ 번아웃, 낭비가 아닌 시간저축 ④ 제대로 시간쓰는 법, 행복학습


선택과 집중을 위한 시간전략


한다혜 / 《트렌드코리아 2024》 공저자

 


  1분 1초가 귀해졌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언제나 중요했지만, “분초를 다투며 산다”는 말이 더욱 실감 나는 요즘이다. 평범한 일상의 시간마저 분초를 다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삶을 운용하는 시간의 단위가 ‘시(時)’가 아닌 ‘분(分)’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시간 대비 가치, 즉 ‘시성비’를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평소 일상에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이를 통해 확보된 시간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선택과 집중’의 시간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에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는 이처럼 시간의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려는 사회의 경향성을 ‘분초사회’라는 트렌드로 소개한다. 이는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에서 올해 대한민국 소비사회를 전망하며 선보이는 첫 키워드이기도 하다.
 

‘분초사회’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


  구체적인 분초사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공감이 간다. 먼저, 시간의 단위가 조각나며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현상들이 눈에 띈다. 직장인들은 휴무 시간을 철저히 조각내고자 반차를 넘어 ‘반반차’를 활용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도 짬을 내어 틈새 PT를 받는 등 시간을 쪼개 금쪽같이 아껴 쓰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직장인뿐만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상에서는 버스 시간을 기다릴 때도 1초 단위로 실시간 버스의 위치를 확인하고, 맛집에 줄을 설 때도 대기 시간을 분초 단위로 확인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도 핸드폰을 꺼내 들고 소위 ‘캘박(캘린더에 박제)’하며 자신의 일과를 촘촘히 스케쥴 표로 정리하는 식의 ‘J형(MBTI 계획형)’ 라이프 스타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다음으로, 시간을 압축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평소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때면 1.5배속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영상을 볼 때 원하는 장면이 몇 분 몇 초에 등장하는지 알려주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 ‘타임스탬프’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OTT 콘텐츠를 시청하는 소비자 10명 중 4명이 표준 속도보다 빠른 배속으로 시청하며, 심지어 29%에 달하는 시청자는 2배속 이상으로 시청 속도를 높게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로 엄청난 수치다.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이동 시간에도 오디오북을 듣거나, 자동차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부터는 차 안에서도 식사나 화장 등 다른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숏폼 콘텐츠 하나를 보더라도 15초를 넘기기 쉽지 않고, 한 화면에 1분 이상 가만히 머무르는 법이 없다. 분초를 다투며 자유자재로 어플리케이션을 넘나드는 ‘멀티테스킹’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됐다.

  다만, 시간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실패를 극도로 꺼리는 경향 역시 짙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6부작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유튜브에서 결말이 포함된 20분짜리 요약본 콘텐츠를 미리 보고 정주행을 할지 말지 판단하는 식이다. 결말을 미리 알게 돼 김이 빠진다며 스포일러를 엄격하게 금지했던 과거의 분위기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심지어는 뉴스기사에서도 긴 글을 읽기 전 미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세줄 요약’이 글보다 먼저 상단에 등장한다. 요약을 먼저 파악하고 내용을 읽지 말지 판단하라는 식이다. 실패를 꺼리는 경향이 ‘두괄식 사회’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편 이러한 ‘실패없는 소비’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쇼핑을 할 때에도 나타난다. 특히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시킬 때에도 다양한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실패의 위험을 줄이려 한다. 소비자에게 가장 아까운 시간은 ‘실패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믿거삼’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은 평점과 리뷰에 민감한 요즘 소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믿거삼이란, ‘믿고 거르는 3점대 식당․카페’를 뜻한다. 다시 말해, 친구와의 약속으로 식당을 정해야 할 때, 리뷰가 적거나 평점이 낮은 곳을 선택지에서 우선적으로 지우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뜻에서 이러한 전략을 펼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어는 실패를 꺼려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옷 하나를 사더라도 나와 비슷한 체형의 구매자가 찍어 올린 리뷰 사진을 찾아보거나, 낮은 평점 순으로 후기를 정렬해 해당 상품의 단점을 미리 알고자 한다. 또한, 선물을 주고 받을 때에도 가급적 힘을 덜 들이고 실패를 피하기 위해 친구가 미리 선별해놓은 ‘위시리스트(원하는 선물 목록)’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56.7%가 친구 위시리스트를 확인하고, 35.1%가 리스트에 있는 상품을 선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성비가 아닌 시성비,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분초사회 트렌드는 우리 사회가 단순히 더 바빠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이행하면서, 시간의 관점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비싼 소유물을 과시하는 것이 중시됐다면 요즘 사람들은 여행지나 맛집, 핫플레이스의 인증샷으로 자랑을 한다. 이는 모두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경험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역시 개인의 시간 관리를 변화시킨 주원인이다.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와 같이 다소 획일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살던 사람들은 자신의 컨디션과 취향에 맞게 일상을 편집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시간의 초개인화’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매주 꼭 가 봐야 할 핫플레이스나 꼭 봐줘야 할 볼거리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도 주요한 배경이다. 특히 구독형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유튜브나 각종 SNS가 계속적으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시간은 순식간에 소비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여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일상 시간의 밀도를 높여 효율적‧응축적으로 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성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자 산업계에서도 소비자의 시간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첫째로 유통업계에서는 고객의 지갑쟁탈전에서 시간쟁탈전으로 경쟁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의 시간을 쟁탈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게임 기능을 선보이기도 하고, 오프라인 아울렛·몰·백화점에서는 호화 포토존을 만들어 소비자의 발걸음을 돌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틈새 시간을 쟁탈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한다. 출퇴근 시간이면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알아볼 수 있는 ‘숏북’ 서비스나 점심시간에 압축적으로 운동하는 ‘틈새 PT(퍼스널 트레이닝)’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시다. 이처럼 고객의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둘째로, 소비자의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주는 서비스 플랫폼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시 말해, ‘분초사회’의 비즈니스 모델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국내 모바일 지도 어플리케이션 ‘카카오맵’은 고객의 미세한 시간까지 알뜰히 챙겨주는 배려가 돋보인다. 카카오맵은 위성을 이용한 초정밀버스 기능을 도입해 실시간 버스위치를 10cm 단위, 1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게 진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오랜 시간 줄서기에 힘을 쏟지 않아도 되도록 ‘원격 줄서기’ 서비스를 도입한 웨이팅 플랫폼은 이제 외식업계를 넘어 금융업계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공평한 자원이지만, 그 결과는 같지 않을 때가 많다. 매일 매일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과적으로 시간당 성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분초사회가 도래하면서 오늘날의 시간 효율성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다가오는 신학기 3월, 우리 모두 ‘선택과 집중’의 시간 관리를 통해 한 학기의 문을 보람차게 열어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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