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숙 /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한국식 교육과 시험능력주의 ]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리며, 한국의 시험 중심 교육 시스템은 뛰어난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교육에 대한 불신, 사교육 의존도 심화,교육 기회의 불균등 등 교육계 내의 직접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다. 이에 지금까지 한국이 교육 철학으로 고수해온 시험능력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와 관련해 오늘날 드러난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능력주의와 시험능력주의 ② 시험능력주의와 수능제도 ③ 한국식 시험능력주의와 진로선택 문제 ④ 한국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함께 존엄한 한국 교육을 그리며

 

강경숙 / 원광대 중등특수교육과 교수
 

  우리나라에 현재 주어진 상수는 ‘저출생’과 ‘고령화’이고, 이제 이것이 뉴노멀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수능 응시인원의 경우 2000년까지는 89만 명이었으나 최근 치러진 올해 수능 응시자는 약 50만여 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재학생만을 기준으로 한 경우, 2000년 63만여 명에서 올해 32만여 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통계청과 교육부에서는 이러한 감소 추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으로서는 입학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인구동향’을 보면, 2분기 합계출생률은 0.70명으로 분기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또한,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떠한가. 학생의 인지능력에 기대는 줄세우기 시험을 통해 상위권 인재를 걸러내는 엘리트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데만 집중해야 할 것인가.

자기주도학습과 토론: 교육현장의 문화와 풍토 개선

  오바마 전 대통령이 10여 년 전 우리나라가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PISA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는 것을 두고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학생들의 교육성과를 부러워하며 한국 교육을 예찬했다. 그러나 한국 방문 시 기자회견에서 개최국인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했을 때 아무도 질문하지 못하고 20여 초간 어색하게 시간이 흐른 예화는 아직까지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EBS <다큐 프라임>의 인터뷰에서 대치동 학원가에서 대입을 준비해온 소위 의대 입학에 성공한 학생이 본인은 의대 준비에 프로그램화된 ‘최종병기’와 같다고 했다. 또한, 서울대에서 성적 좋은 최상위권 학생을 추적했더니 교수의 강의를 그대로 노트한 방식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학생들은 교수의 지식과 생각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암기만 하고, 비판적 사고 없이 타인의 지식을 복사해야 할 것인가. 아이들은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공부하라는 말이라는데 자기 주도 학습은 과연 말뿐인가.

  유대인의 하브루타(Havruta) 교육은 어떤가. 공부를 잘하기로 유명한 유대인들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동료학습인 하브루타로 교육한다. 이스라엘식 밥상머리 공부법인 하브루타는 천재를 만드는 공부법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조용하게 혼자서 공부하지만, 유대인의 도서관은 시끄럽다. 생각을 교류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는 도서관은 상상만 해도 즐겁고 시원하다.

  다른 사람과 본인의 지식을 나누고 설명하면서 의미를 조금 더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예일대의 심리학자 존 바그 교수의 연구는 조용히 암기하고, 옆 사람에게 설명해주라고 한 집단이 훨씬 학습 성과가 좋았다고 한다. 상대방이 있으니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갈등관리능력, 문제해결능력, 위기대처능력, 의사소통능력을 기를 수 있지 않겠는가. 정녕 한국 교육현실에서 자기주도학습, 토론학습은 어려운 것인가.

한국형 시험능력주의와 인적자원 개발 교육에 대한 의문

  시험으로 줄 세우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교육은 과연 정당할까. 2025년부터 고교내신 절대평가와 수능 절대평가를 외치던 당국은 기대와는 다른 2028 대입 개편안을 발표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2020)에서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은 시대의 정의를 고민하는 학자답게 서구 능력주의의 위선을 수많은 사례를 들어 귀납적으로 입증했고, 전제와 논거가 결과와 불일치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분석했다.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라는 것이다. 서구의 능력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판국에 우리 사회 일각의 왜곡된 능력주의가 앞뒤가 맞지 않는 허상이라는 사실을 넘어 불공정을 정당화하고 심화시키는 도구로쓰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교육의 방향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목표를 ‘인적 자원 개발’과 같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경쟁과 스펙만을 쌓게 하는 것보다, 각자의 개성과 본연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발휘할 수 있도록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삶의 비교우위에서 행복을 맛보려던 인정 욕구와 투쟁, 우리가 붙들고 있던 성공의 가치, 개발 지향이 얼마나 끝없이 목마른지, 조금은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신인류 시대를 맞아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적응력을 길러야 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고 더불어 사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시대의 올바른 방향이다. K-방역의 성숙함으로 국민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된 것처럼, 새롭게 재편된 세계를 열어갈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의 노정에서 한 사람도 낙오시키지 않는 존엄한 인간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 전 세계는 이제 우리에게 기품 있는 성숙한 교육의 모습을 기대한다.

언어와 논리지능에서 다중지능이론으로

  교육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는 정규교육과정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구별해내기 위한 진단검사를 개발했다. 지능지수(IQ)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IQ는 인간이 다양한 지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중지능 연구소에 따르면, IQ가 높은 사람 중에 약 20%만이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학습능력과의 상관관계는 40% 정도에 불과하다. 하버드대 교수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t)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이 이론은 25년간의 ‘Harvard Project Zero’의 연구결과와 첨단 인지과학 연구성과들이 결합돼 개인이 다양한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이 연구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뇌에서 담당하는 부위에 따라 지능을 분류했는데,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자기성찰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자연친화지능 등이다. 가령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지능이 부족해도, 음과 박자를 쉽게 이해하고 창조하는 능력인 음악지능이 뛰어날 수도 있고,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 욕구 등을 이해하는 인간친화지능이 뛰어날 수도 있다.

  지능이란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물건을 창조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그 문화에서 유영하게 쓰일 수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잠재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의 상황에 따라 다른 지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지능을 존중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IQ에서는 천재·일반인·저능아가 있지만 MI에서는 각 개인에 따라 강점 지능이 있기 때문에 누구는 과학자로 혹자는 음악가로 또 다른이는 댄서로 살아갈 뿐이다.

우리 공동체의 과제

  우리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비대면 시대를 맞이했다. 이에 교육계에서 격차와 소외, 교육의 불평등이란 주제는 이제 어색하지 않은 화두가 됐다. 다수의 조사연구와 통계를 봐도 격차가 점점 심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또 우려한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이런 일련의 도전에 대한 유력한 응전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디지털 전환’이다. 뿐만 아니라 생태전환교육, 지속가능교육, 민주시민교육, 평화교육 등은 지속적으로 국내 교육학자들이 강조한 교육이다.

  유네스코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에 교육 형평성, 세계시민교육과 같은 가치가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스며들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뿐 아니라 서로 연대하고 상호 존엄을 체득하는 교육, 교실의 동기들이 경쟁 상대이기보다 본인과 아무리 다르고 열등해 보여도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 끌어올리려는 힘. 이러한 역동은 결국 교육에서 나온다.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되려면 결국 이렇게 사회적 고리가 약한 집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해 포도원 열매도 다 따지 말고, 떨어진 이삭 마저 줍지 말고 남겨두고(레 19:9),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않는 것이(렘7:6), 이웃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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