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일 / 경상국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_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정치라는 개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 발전과정을 거쳤는지, 여성정치, 청년정치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정치가 나아갈 길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정치는 왜 필요한가 ② 한국 정치의 발전 과정에 관해 ③ 청년정치, 여성정치의 등장 ④ 정치철학으로 답을 찾다

 

정치철학은 필요한가

 

 

  정치는 현실이다. 정치는 권력, 엄밀히 말해 권위를 둘러싼 인간의 활동이다. 권위란 권력을 가지고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달리 표현해보자면 정치란 공식적 권력인 권위를 쟁취 및 유지하고 사용하거나, 그런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자 시도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현실에서 정치적 권위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이미, 그리고 항상 설립돼 있으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공식적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 정치적 권위는 인간의 실제 역사 안에서 무력, 세습, 쿠데타, 혁명, 다수결, 법적 절차 등에 따라서 세워져 왔다. 일단 세워진 권위는 절대적이든 제한적이든, 권위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행위를 크고 작게 제한하면서 지배한다.

  현실에서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은 정치적 권위가 각종 제도나 기관을 통해 행사될 때 사람들이 그 권위에 순응하거나 처벌받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권위에 순응하거나 처벌받는 것이 모두에게 온전히 정당하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그런 현실은 없다. 정치적 권위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그 권위를 어떤 이유에서든 지지하는 일부이고, 나머지는 권위의 정당성에 반발심 또는 의구심을 품는다. 정치적 권위가 완전히 정당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거나 최소한 인정할 만큼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정치적 권위가 행사하는 공식적 권력에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을 만큼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끊임없는 질문과 그 답변을 검토하는 것

 

  인간 사회에 과연 공식적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정치, 또는 정치적 권위가 필요할까. 필요하다면 어떻게 세워져야 할까. 세워진 정치적 권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그 답변을 촘촘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바로 정치철학이다.

  철학은 이상이다. 철학은 무엇이 진리이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탐구이다. 특히 인간 사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탐구한다. 철학자는 그런 진리가 없다면 왜 없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한다. 어떤 내용과 모습의 사회가 아름답거나 가치가 있거나 좋거나 옳은 사회인지 등을 알려고 한다.

  정치철학적 탐구를 통해 제시되는 이상적 정치 사회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권위가 없는 사회, 정치적 권위가 있다면 만장일치로 세워진 사회, 세워진 권위가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 이런 이상적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간의 역사와 우리의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다. 이상적 사회는 정치철학자들의 머릿속 상상과 글로 쓰인 이론 속에 존재할 뿐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란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결정을 따라야 하는 사람이 그 결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준법자가 바로 입법자이고, 피지배자가 지배하는 자기 지배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모든 구성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서 모두가 동의하는 결정을 만들어 내는, 이른바 만장일치의 직접 민주주의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고 각각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모습을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정치의 환경과 민주주의의 이상을 혼동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는 결정이 만들어지면 바로 그 사람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입법자에서 탈락이 되고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꼴이 된다.

  정치철학자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으로서 민주주의가 왜 이상적인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문제는 증명에 성공한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이상은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장일치의 직접 민주주의, 인간의 역사에서 이것을 실현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정치철학자는 실현할 수 없는 이상적 정치 사회 또는 정치가 없는 사회를 꿈꾸고 이야기한다.

  비현실적인 이상을 논의하는 정치철학은 필요한가. 어떻게 할 때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고, 모든 시민이 정치적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으며, 그리고 모든 개인이 실질적 자유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바람직한 답변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바람직해도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실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는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현실에서 지배 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지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해서 지배의 일을 맡기는 것이다. 소수의 유능하고 탁월한 집단이 정치적 권위를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대의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라면 정치적 권위는 반드시 가능한 한 많은 구성원의 선택을 받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정치적 권위의 타당성과 효율성은 시험 등의 절차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가능한 많은 구성원의 선택을 받은 개인이나 집단이 정치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실현해 보려는 노력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비록 이상적이긴 하지만 바로 이상적이기 때문에 현실이 따라가야 할 지향점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만장일치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채택한 원칙이 바로 다수결 원칙이다. 다수결 원칙을 채택하고 따르는 이유는 다수의 의견이 옳거나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고, 소수의 주장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을 결정하고 따르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자기 지배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 많은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서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따라야 하는 결정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는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의 결정 방식이 궁극적으로 따라야 하는 원칙으로서 분명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치는 사회를 움직이는 제도적 힘을 만들거나 공식적으로 획득하고 유지하고 또 사용하는 일이다. 정치과학은 그 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며 어떻게 해서 지금 있는 자리에 자리 잡게 됐는지 등을 설명하는 틀을 만든다. 정치철학은 그 힘이 나아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으로서의 쪽을 탐구한다. 힘은 강할수록 좋지만 제어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틀은 정확해야 하지만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쪽은 누구나 쳐다볼 수 있기 위해 높고 멀리 있어야 하지만 선명해야 한다.

  정치철학은 가능한 한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이상적 사회를 제시할 수 있다. 하나의 개념이나 이론의 바람직함은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덜 바람직한 것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현실성 때문에 더 바람직한 것이 된다.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나 상태를 주장하는 정치철학은 현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지월의 비유가 알려주듯이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쳐다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철학이 보여주려는 것을 봐야 하고, 정치철학 자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떤 정치철학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말이 현실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실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훈고학적 정치철학은 학문적 사치다.

  또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당장 우리를 달에 데려다 놓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달에서 생존할 수 있는 준비를 여기 현실에서 충분히 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구성원 개인이 우선 충분히 안전하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책임 있는 자유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연습을 지금의 비이상적 현실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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