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 / 경제학과 교수

 

11월의 추억
 

고선 / 경제학과 교수

 

  한 해 열 두 달 중 11월에는 공휴일이 하나도 없어요. 저에게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이른 가을 추석과 10월의 여러 공휴일들 때문에 쉬는 날 없는 11월이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10월에 개교 개념일이 있는 우리 학교는 더 하죠. 중간고사 기간을 지나 남은 학기를 달리는 바쁘고 숨찬 시기이기도 합니다. 12월에 느끼는 연말의 설렘도 없지만, 색 바랜 채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보며 감상에 잠기기 좋습니다. 점차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두꺼운 옷을 입고 어두운 새벽이나 스산한 저녁에 종종걸음 치는 때이기도 하죠.

  이런 건 교수의 감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어요. 11월 학교 밖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온갖 일로 풍성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며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빼빼로 데이에 막대과자를 나누며 작은 마음을 건네기도 합니다. 전태일의 죽음을 기억하며 모이기도 합니다. 대학에서도 수능이 끝나면 수시 입시철을 맞아 분주하군요. 미래 우리 학교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싱그러운 청년들이 캠퍼스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몇몇 교수들은 입시를 앞두고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고, 입시가 끝난 뒤에는 여러 교수들이 분주히 채점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되돌아보면 대학생 시절 11월에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학교는 학교대로 분주했고, 학교 밖에 나돌아다닐 일이 왜 인지 그리도 많았어요. 학교는 11월만 되면 선거로 시끌벅적 했죠. 학과 학생회장부터, 단과대학과 총학생회장까지 선출해야 11월이 다 지나갔어요. 분위기나 의미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올해도 예술관에 후보들을 알리는 큰 현수막이 곧 걸리겠군요. 선거에서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아 비상대책위원회가 봄까지 꾸려 지기도 합니다. 이걸 매년 비상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세워가야 할까 싶습니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에 대해 낯설어 하면서도 기대하는 게 바로 참신함과 새로움인데, 학생회라는 과거의 유산도 패기 있게 혁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원생 시절 11월에 대한 기억은 크지 않아요. 수업 듣던 시절에는 기말 보고서를 걱정하기 시작하며 아마도 조금씩 숨죽여가지 않았을까요. 대학원생들에게는 공휴일이 여느 평일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였을까요. 공휴일은 종종 학교 올 때 조금 더 붐비는 날, 학교 안 식당이 문 닫아 밥 먹기 조금 번거로운 날일 뿐이었죠. 오래 전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삶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불렀어요. 직장인들에게는 비통한 상황이었겠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물론 예전에도 모두 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어찌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지금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일을 하는 건지의 문제겠지요.

  11월은 대학원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학위논문 심사를 할 때이기도 하군요. 12월로 넘어간 적이 많았지만, 올해는 지도 학생들이 열심히 잘 하고 있어서 11월 중으로 심사를 모두 잡으려 합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행운을 빕니다. 주말도, 공휴일도, 저녁도 없는 삶을 여전히 살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학문 탐구의 최전방에서 우리가 가진 지식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분들을 깊이 존경합니다. 11월에도, 올 한 해에도 연구의 성찬을 맘껏 즐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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