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률 / 약학과 석사연구원

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누군가의 인연을 지켜본 경험과 마주했던 많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새로운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흔들림 없이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결국 주변에는 안정적인 관계가 남는다. 〈편집자 주〉

 

관계에 대한 고찰

 

윤홍률 / 약학과 석사연구원

 

  부케를 받았다. 신랑과 신부 주위로 모여 있던 하객들 속에서 “남자가 부케 받는 것 처음 봐”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사실 나조차도 처음 겪는 일이긴 했다. 신부의 동성 친구, 특히 결혼을 앞둔 친구가 받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나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에게 부케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나도 기쁘고 신이 났다. 이들이 처음 만나는 그 순간에 함께 있었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만나 왔는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결혼식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힘을 다해 축하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이런 순간을 만들어 준 두 사람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살다보니, 온전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일이 꽤나 어려운 일이란 걸 알게 됐다. 특히나 현재 스스로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면 더더욱, 타인의 행복에 공감하기 힘들다. 나의 경우, 수험생활을 하면서 그걸 느꼈던 것 같다. 2년 4개월의 군생활을 끝마치고 패기롭게 수험생활을 시작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 길은 험난했고, ‘내가 과연 성공적으로 이 생활을 끝마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빠졌다. 그러는 와중에 함께 시작한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앞서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부는 성공적으로 수험생활을 끝내고 떠나게 됐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완전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에 아직 남아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옹졸한 내가 스스로 많이 창피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인간관계에 대해 돌이켜보게 됐다. 이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 내린 결론을 조심스레 써보고자 한다.

 

 

Re, Action

  사람 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케미(Chemistry)가 잘 맞는다”라고 표현한다. ‘케미’가 그 순간과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화학반응(Chemical Reaction)으로 보다 더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화학반응은 A라는 물질과 B라는 물질이 만나 C라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되는 과정이다. 화학반응은 기본적으로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진행된다”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데, 에너지가 높을수록 물질은 불안정해지고, 안정한 상태를 찾아서 이리저리 변한다는 것이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약학에서는 유기합성 반응을 비롯한 각종 화학반응들이 사용된다. 그래서 이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면, 마치 우리 주변의 관계도 이런 화학반응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나를 무던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크게 화를 내거나, 어떤 일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체적으로 맞는 평가인 듯 하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타인의 흥망성쇠보다는 나의 상황과 미래에 집중하는 편이다. 앞서 언급한 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매우 낮은 에너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참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질 때가 있다. 가장 최근에는 석사 졸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고, 무지함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게 됐다. 석사 과정 2년이 짧지 않았음에도 논문을 채우지 못한 실력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에 조급했다. 그 와중에 병행한 대학원신문사 편집장이라는 직책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아마 구성원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임기를 다 끝마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 놓여지다보니 저절로 불안정해졌다. 높은 에너지 상태인 나는 잘 마른 장작처럼 사소한 마찰에도 금세 불붙기 일쑤였다. 덩달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힘든 시간이 됐는데, 식사 약속을 정하는 정말 사소한 일에도 싸우곤 했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간을 극복하고 나니, 화학반응에서 새로운 C가 형성되듯 이전과 다른 관계가 형성됐다. 더 견고하고 더 낮은 에너지의 상태, 안정적인 관계가 새롭게 구성됐다.

  “싸우다 정 든다”, “결혼 전에 많이 싸워봐야 한다”라는 말들이 있다. ‘싸움’은 부정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 들다’, ‘결혼’이라는 긍정적 상황으로 귀결된다. 높은 에너지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결국 반응이 일어나 안정한 상태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다만, 그 결과가 옳은 방향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부지런하게 얽힘

  ‘네트워크’라는 말은 너무나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최근엔 뇌 과학 연구에 힘입어 ‘뉴럴 네트워크(Neural Network)’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특히 2020년대 최대 화두인 인공지능은 이런 뉴럴 네트워크를 모방한 논리 회로를 컴퓨터 알고리즘에 적용한 결과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이에 대입해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얽히고 설킨 뇌세포들의 형태와 인간관계는 꽤나 많이 닮아있다.

  그렇다면 이 뉴럴 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는 세포체를 기준으로 머리(수상)와 꼬리(축삭)에 더듬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각각 수상돌기와 축삭돌기라고 하는데, 수상돌기에서 축삭돌기 쪽으로 전기신호가 전달되면서 생명체의 의식과 행동이 이뤄진다. 이때 각각의 신경세포들은 물리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냅스 틈’이라고 불리는 미세한 거리만큼 떨어진 상태로 A신경에서 B신경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때문에 신경세포가 ‘시냅스’를 형성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는 ‘기억’의 형성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작은 자극에 의해서 일시적인 시냅스가 형성될 수는 있지만, 물리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소성을 가진다. 하지만 강력한 자극 또는 반복적인 자극으로 인해 일정 수준이 넘어가게 되면 ‘장기상승작용(Long-Term Potentiation, LTP)’이라는 세포 수준의 학습 기작이 진행된다. 영어 단어를 반복해서 외워야 오래 기억에 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사람 간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혈연관계가 아닌 이상 각자의 삶은 단독적으로 존재한다. 서로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때로는 깊이 관여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별개의 삶이다. 언제 어디서나 끊어질 수 있는 유한한 관계가 기본값으로 설정돼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 굳이 강하고 자극적인 신호로 시냅스를 형성할 필요도 없다. 작은 신호라도 반복적이고 꾸준히 주어진다면 충분히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연애의 시작과도 비슷하다. 연애 또한 두 사람 간의 관계이기에 시작, 즉 썸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은 범위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야 하는 것이다.

  한 번 형성된 관계에 대해서는 소실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네트워크의 범위가 넓거나 화려하지 않다. 다만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많은 편이다. 특히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입학 동기 몇몇과 인연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 처음 관계가 성립될 때처럼 매주 만나거나, 술자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년에 만나는 횟수는 손에 꼽힌다. 그러나 서로의 생일 또는 기념일을 축하하고, 종종 연락하는 정도만으로도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변함없는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렵고 저마다 독특하다. 부케를 받는 신기한 남자 하객이 된 나의 경우도 그렇지만, 삶이란 불분명하고 의외성이 다분한 시간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삶들마다의 불확실성이 결합하게 되는 인간관계야 말로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니 섣불리 예상하거나 현재의 어려움에 동요하지 말자. 결국 이어질 인연은 안정을 찾으며 견고해질 것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새로운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흔들림 없이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결국 내 주위에 ‘좋은 관계’만이 남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스스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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