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예산안 긴축의 나비효과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은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내 연구개발 환경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의 대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후 지난 8월 말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25조 9천억원으로 올해 대비 16.6%나 감소했다. 이러한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의 전년 대비 감소는 3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감소의 폭도 매우 커 연구 관계자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본지는 이러한 연구개발 긴축의 배경이 된 ‘연구개발 카르텔’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긴축 예산이 학문 후속세대가 될 원우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연구개발 카르텔 논쟁

  정부의 연구개발 카르텔 지적과 긴축을 통한 해결 과정에 대해, 연구 현장에서는 상반된 입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대덕넷 인터뷰에 응한 일부 연구원들은 대통령이 지적한 연구 카르텔과 관련한 문제에 동의하며 연구 선정과정의 불공정성, 과도하게 산정된 연구 예산으로 인한 낭비 문제 등에 공감했다. 반면, KBS 뉴스 대전의 패널로 참여한 노환진 전 UST 교수 등은 정부가 언급한 카르텔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카르텔 논의가 연구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안철수 국회의원이 지난 8월 말 일요시사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정부가 강조한 연구개발 카르텔 문제가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서 비롯된 문제를 잘못 이해한 결과라는 관점도 존재한다. PBS 제도는 1996년부터 시작돼 기관의 연구자들 간 경쟁을 유도하고 연구의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연구비에 대한 제로섬 게임의 형태로 나타나 연구 집단 간 양극화를 유발해 이를 카르텔 문제로 오인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PBS 제도의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단순히 긴축 예산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 예산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예산 투입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이권 카르텔로 인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정부가 이권 카르텔의 실체를 지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는 연구개발에 대한 문제의 다른원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계는 PBS 제도를 국내 연구개발의 한계 원인으로 계속해서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제도 개혁 없이 관료의 관점에서 문제를 연구자들로부터 찾으며 긴축이라는 채찍을 들고 있다. 창의와 자율이 자산인 과학계지만 국내 과학계는 여전히 관료 중심주의와 규제 일변도의 환경에 메여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부가 바라는 생산적인 과학계로의 전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원우들이 바라보는 연구개발 긴축문제

  카이스트를 비롯한 과학기술원들과 국내 여러 대학 및 대학원에서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대응하는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미래 연구원을 꿈꾸는 원우들은 자신들이 카르텔의 구성원으로 매도되며, 그들을 규제하는 정책 입안과 예산안 수립에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달 13일자 한겨례 보도에서 대학원 재학생들의 인터뷰를 보면, 과제참여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해오던 카이스트 모 박사 과정생은 연구 생활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예비 연구원인 원우들의 불만이 국내 연구환경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과학계는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고, 정부는 이를 공감해 연구개발과 관련한 지원을 늘려왔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개발 예산안 감축 소식은 연구 환경개선의 한계를 의미할 뿐 아니라, 연구자의 의견은 무시된채 정부가 과학계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 연구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연구개발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예산 삭감으로 인해 연구자원 자체가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실망한 예비 연구자들의 이탈이 예상되는 만큼 미래에 나타날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보단, 현장에 귀 기울이는 세심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상현 편집위원 | mm20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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