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연 /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한국식 교육과 시험능력주의]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리며, 한국의 시험 중심 교육 시스템은 뛰어난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교육에 대한 불신, 사교육 의존도 심화, 교육 기회의 불균등 등 교육계 내의 직접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다. 이에 지금까지 한국이 교육 철학으로 고수해온 시험능력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와 관련해 오늘날 드러난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능력주의와 시험능력주의 ② 시험능력주의와 수능제도 ③ 한국식 시험능력주의와 진로선택 문제 ④ 한국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역사를 통해 바라본 시험능력주의의 효용과 한계
 

이욱연 /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21세기 대한민국은 공정과 더불어 능력주의가 사회 화두다. 능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불공정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청년세대의 불만이 높다. 능력주의 차원에서 공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이 능력이 아닌 다른 것에 좌우됨을 말한다. 그런 다른 것에는 집안 배경, 나이, 출신 학교나 지역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한국 미래세대가 불공정의 배경으로 지목하는 이런 것들은 근대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폐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근대화가 이미 절정에 이른 한국에서 이에 대한 차별 철폐 및 능력주의 요구가 다시 청년세대에게서 언급되고 있다. 지금 청년세대 눈에는 한국이 조선 시대로 돌아가고 있고, 여전히 신분제 사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능력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시험이 능력을 가장 공정하게 평가하는 잣대라는 시험능력주의를 선호하는 여론이 청년세대 사이에서 높다. 다른 주관적 요소가 아니라 시험 문제라는 객관적 요소로 능력을 평가함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요구는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커졌다. 당시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정시 비중을 30%대로 정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 사태 이후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올해까지 40%대로 높이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날한시에 같은 문제를 풀고 그 결과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시험능력주의 시스템, 시험 성적이 높은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고, 그렇게 선발된 사람에게 권력과 부를 누리는 시스템에 대한 신앙, 이는 이미 1,500년 전 중국 수나라에서 기원했다. 수나라 황제 문제는 국가 운영에 참여할 인재를 출신이나 집안을 보고 뽑지 않고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과목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뜻인 과거제를 도입한 것이다.
  수나라 황제는 왜 과거제라는 시험능력주의 방법을 도입했을까. 그 이전에는 출신 집안과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했고 이에 따라 귀족이 권력을 세습했다. 특권층인 귀족끼리 권력을 나눠 가져서 귀족 권력은 갈수록 강해졌으나 황제 권력은 비교적 약화됐다. 그래서 황제는 집안이나 아버지를 보는 것이 아닌 실력을 보고 나라를 운영할 사람을 뽑기로 했다. 귀족 권력의 해체와 동시에, 배경만을 이유로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무능으로 인한 문제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나라 때 시작한 과거제가 중국에서 정착한 것은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 때다. 그 오랜 기간 기득권 귀족 세력은 과거제 도입에 저항했다. 시험능력주의인 과거제 도입으로 세습 귀족층이 해체되고, 능력주의 사회로 바뀌었다. 이렇게 변한 송나라는 근대 사회와 비슷했다. 신분 차별이 없어졌고, 세습을 통해 지위를 누린 사람은 오직 황제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송나라 시대를 근대와 비슷한 시기라고 보면서, 근세라고 부른다.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과 비슷한 사회가 출현한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중국이 지금도 우리보다 더 심하게, 능력에 따라 차등해 대우하는 능력주의 사회인 것은 이러한 오랜 역사적 전통 때문이다. 과거라는 시험능력주의를 도입한 뒤 중국사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면, 우리나라가 시험능력주의를 외치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다. 세습 귀족 사회같은 오늘 한국 사회를 보면 그렇다.

■ 김홍도의 화첩평생도 중 소과응시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김홍도의 화첩평생도 중 소과응시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위와 같은 과거제를 우리도 실시했다. 처음 제도를 시작한 고려에도 중국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인 정도전은 과거제로 배출된 신흥 사대부다. 과거제가 도입되면서 고려 귀족층이 흔들렸고, 능력있는 인재가 요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조선 건국에 중요 한 인적 토대가 됐다. 그래서 조선에서 세습 귀족층이 해체되고 능력주의 시대가 열렸을까. 그렇지 않다. 조선에는 과거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습 신분제인 양반제가 공존했다. 시험에 참여하는 기회는 나름 평등하게 작동했지만, 그 평등은 과거 시험 참가 조건에서 평등일 뿐 막상 과거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신분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
  농사일을 하며 과거 준비를 하는 사람과 넉넉한 집안에서 매일 공부만 하는 사람은 시험 준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궁궐에 경사라도 있게 되면 예정에 없던 과거가 갑자기 실시됐다. 풍족한 양반집에서 시험 준비만 하는 전문 고시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과거 제도를 통해서 귀족 제도가 해체됐는데, 조선 시대는 양반제를 둔 채 과거제를 운영하다 보니 오히려 과거제가 양반이 누린 세습 기득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우리에게는 중국처럼 과거제를 통하거나, 프랑스처럼 유혈혁명을 통해서 세습 기득권이 해체된 역사 경험이 없 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 능력주의가 도입됐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능력주의 사회로 바뀐 것은 아니다. 일본식 근대화와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연공서열제가 먼저 도입되면서, 서열이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학력에 따라 결정됐다. 일본 인류학자 나카네 지에(中根天枝)는 일본인은 사람 사이의 능력 차이가 크지 않다고 여기는 능력 평등의식이 있어서, 개인 능력에 따라 평가하는 능력주의 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일본처럼 한국도 개인 간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능력 평등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개인을 소속 집단이나 나이 같은 일률 기준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능력에 따라 평가하는 능력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문화적·역사적 구조로 볼 때 한국 사회에는 능력주의 유전자가 그만큼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험능력주의를 갈망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에 대한 거대한 방향 전환 요구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험능력주의 시스템을 부활하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시스템은 시스템을 성립시킨 조건이 달라지면 한계에 이른다. 과거제라는 시험능력주의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①시험이 공정하게 관리될 것 ②모든 사람에게 시험 참여기회를 줄 것 ③결과에 따라 우수한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이 이뤄질 것 ④시험 준비를 위한 조건이 같을 것 ⑤과잉 경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 ⑥낙방하거나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그 결과에 승복할 것 등. 이 가운데서 주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마지막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경제적 여건이 좋을수록 비교적 시험 준비를 더 잘할 수 있었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을수록 합격이 어려워진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합격시키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탈락시키기 위해서, 문제와 답안이 복잡해진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 팔고문이라는 기이한 형식이 과거제에 출현한 것 도 이와 비슷한 이유이다. 수능에서 상위권 변별력을 위해 수학과 국어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이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과거제를 폐지하게 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제라는 시험능력주의 시스템을 탄생시킨 조건이 변해 그 시스템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럼 과거제를 폐지한 것처럼 시험능력주의를 완전히 폐기하는 게 해결책일까. 갈수록 세습되는 기득권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시험능력주의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갈망을 고려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제도는 문화와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험 능력주의가 존치하며 잘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오로지 시험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우수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과거보다 다양해진 만큼 과거제만으로는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발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험만을 유일한 방법으로 고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능력을 측정하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필요하다. 다만, 다양한 능력의 측정과 관련해서 공정성을 늘 염두에 두고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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