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경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Cleared for Take Off

민가경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지난달에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이 해제된 이후, 사실상 엔데믹을 맞은 이 땅은 각종 여행상품과 항공권 매진 대란을 연일 갱신 중이다. 인고의 시간 끝에 하늘길이 다시 열렸으니 여행 수요 폭증은 당연지사. 종강과 여름휴가를 앞둔 이들, 가족과 연인들은 삼삼오오 공항으로 향할 것이다.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북적이는 공항은 기꺼이 그 혼잡을 견딜 뿐이다. 오랜만에 옛 동료와 통화를 했다. 요즘 죽을 맛이란다. 말없이 웃었다. 내가 몸담았던 전 직장은 공항 관제탑이었으니까.
  긴장감이 맴도는 고요한 관제탑 실내에 치직거리는 주파수 소리가 들려온다. 교신을 시도해오는 조종사의 목소리. 관제사는 즉각 응답한다. 허리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시선은 전방에 고정한 채 미어캣처럼 창밖을 내다본다. 공항 작업차량, 저 멀리서 다가오는 회전익 항공기 등 관제탑 창밖 너머 무언가가 움직이면 민첩한 동체시력에 의해 포착된다. 항공기는 경로, 고도, 고유번호 등 전반적인 비행 계획을 관제사에게 허가받고 모든 승객을 태운다. 엄청난 첨단 기술을 탑재한 항공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으니, 도움 없이는 후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앞바퀴에 토잉카를 붙여 뒤밀기(Push-Back)를 해줘야하고, 관제사는 주기장 구조, 항공기 크기, 타 항공기 진출입 경로 등을 계산해 뒤밀기 방법을 지시해줘야 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항공기는 관제사가 지시해준 경로를 따라 활주로를 향한다. 관제사의 “Cleared for take off” 그 한 문장을 듣기까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항공기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고 엔진 추력이 뒷받침되면 가속 붙은 동체와 날개 아래로 양력이 쌓인다. 항공기는 이내 고개를 서서히 들다가 중력을 가뿐히 무시하고 활주로를 박차 오른다. 고요히 떠나가는 항공기를 보며 관제사는 조종사에게 말한다. “Good Day” 부디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그러나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다. 또 다른 항공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활주로를 향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곳’에서 떠나보낸 항공기가 언젠가 반드시 ‘그 곳’에 도착할 거라는 믿음처럼, ‘그 곳’으로부터 떠나와 ‘이 곳’에 당도한 항공기엔 그 곳의 관제사가 실어 보낸 믿음이 있다. 그러면 늦지 않게 말해줘야 한다. “착륙을 허가합니다 (Cleared to land)”
  지금은 떠나온 직장이 됐지만, 하루치의 모든 항공기를 떠나보내고 텅 빈 새벽의 공항을 안도 섞인 한숨으로 내려다보던 7년의 시간들이 내게 가르친 교훈은 단 하나,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하나 영영 머무르지 않는, 오고 갈 뿐인 것들 틈새에서 우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하나 그 안에 생명과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은 없기에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한다. 그것은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살면서 겪는 ‘행운’과 ‘불행’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도 만들고, 동시에 희망차게도 만든다. 누군가를 떠나보냈어도 또 다른 누군가 새로 찾아올 것이고, 어떤 슬픔을 겪고 있어도 언젠가는 황송할 만큼의 기쁨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공항은 어쩌면 세상과 수많은 인생들을 함축하고 있는 디오라마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활공의 감각을 다시 배우기 위해 공항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Cleared for take off”, 누군가 당신의 이륙을 허가해줄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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