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영 / 연극학과 교수

 

효율 나쁜 학문 올림픽

 

백남영 / 연극학과 교수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2007)의 일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다. 그리고 마라토너다. 필자의 생각에 그는 글 쓰는 사람들 중 아마 가장 유명한 마라토너가 아닐까 한다.
  나도 하루키만큼은 아니지만, 꽤 뛰었다. 아니, 꽤 뛰고 있다. 뜀뛰기를 좋아해 그에 관한 책이라면 이것저것 뒤져봤다. 성경에서 믿음·소망·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듯, 뜀뛰기에 관한 책이라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일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책 곳곳에 죽순처럼 돋아나 있는 앞의 문장들이 날 빤히 쳐다보며 툭 던진다. “뜀뛰기 책인 줄 알았지? 단순하긴, 이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책이야!” 역시, 소설가의 필력이란 때로 경이롭다.
  다만, 책의 문장 중 ‘효율’이라는 단어가 눈에 거슬린다. 효율의 사전적 의미는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로 정의된다. 만약에 대학의 전공 중 어떤 학문이 더 효율이 떨어지는지를 가려내 메달을수여하는 올림픽인 ‘효율 나쁜 학문 올림픽’이 있다면 본교의 많은 예술계열의 젊은 청춘들이 메달 경쟁을 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는 쿠베르텡이다. 그렇다면 ‘효율 나쁜 학문 올림픽’의 창시자는 누구일까. 정답은 나, 또는 당신, 아니면 우리 모두. 이는 오답 같기도, 정답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부디 비록 효율은 떨어지지만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색과 형태로, 몸과 소리로, 종이와 연필로, 밤을 새워 가며, 땀을 뚝뚝 흘려가며, 끊임없이 탐구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그런 메달을 수여하지 않길 기원한다. 그리고 마라톤과 같은 그들의 긴 여정을 우리 모두가 응원해주고 환호해 주면, 우리 젊은 청춘들은 자신의 다리로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42.195km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젊은 날, 응원과 환호를 보내던 수많은 사람들 덕에 우리가 있듯이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때와 지금의 시대가 변했다고 말하지 말자. 시대는 늘 변해왔고, 우리 청춘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때보다 더욱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지금, 바로 지금이다. 우리 청춘들에게 필요한 건 메달이 아닌 우리들의 진심 어린 응원, 그리고 뜨거운 환호와 따뜻한 격려라고생각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효율 나쁜 학문 올림픽의 메달을 수여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해주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탄생했던 것처럼 말이다.
  ‘2023 서울 마라톤 겸 제93회 동아 마라톤’에서 42.195km를 뛰고 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비적비적 걷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어떠하랴. 이 효율 나쁜 장거리 달리기가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니. 다음 대회를 또 예약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추신. 본교 체육대학 학생들이 참가자들을 위해 근육보호 테이핑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