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혁 / 레벨나인(Rebel9) 디렉터

[예술_메타버스, 아트 플랫폼의 새로운 미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술계는 전례 없는 운영상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난관을 빠르게 극복한 것을 시작으로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 등 고도의 기술이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메타버스’와 ‘NFT’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하며, 이러한 플랫폼이 어떻게 미술계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메타버스의 개념과 미술계로의 확장 ②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과 지원 ③ 메타버스의 미래 ④ NFT아트의 예술적 가치

 

메타버스의 가능성은 이제 시작이다

 

김선혁 / 레벨나인(Rebel9) 디렉터

 

 
 

  최근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사회의 전 분야를 강타했고,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첨단기술이 그러하듯이, 메타버스가 그려내는 미래의 청사진은 분명 스펙터클하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몰아치는 파도만 바라보면 메타버스가 가지고 오는 근본적인 변화, 장기적인 변화에 관한 논의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메타버스를 코로나로 촉발된 비대면 경험을 위한 수단 혹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사회 전체의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기 쉽다. 하지만 온라인이나 비대면으로 미술 작품이나 전시를 전달하는 게 유일한 목표라면 메타버스는 기술적으로 과잉이자 사치스러운 공간에 가깝다. 작가의 창작 과정, 미술관의 전시 활동, 작품을 향유하는 관람객 경험을 아우르는 전제 자체가 움직이는 무대로 메타버스를 살펴봐야 지금보다 의미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사라질 수 있어도, 기술환경으로 인해 창작과정이 변화하고, 대중의 경험이 확장하는 발전은 결코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메타버스의 이름을 띤 여러 사례를 들여다보기보다 메타버스를 대하는 기본 관점을 살펴보겠다. 첫째, 메타버스 그 자체는 모든 작가에게 필수적인 창작 도구가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료 중 하나일 뿐이다. 즉 작품의 세계관을 전개할 수 있는 시공간의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이미 메타버스의 등장 이전부터 현대미술 작품은 더 이상 작품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은 작가가 제시하는 내러티브나 세계관의 일부이자 드러나는 형식 중 하나이다. 작품 외에도 ▲퍼포먼스 ▲온라인 ▲영상 ▲출판물 ▲굿즈 등 규정할 수 없는 여러 경험 채널을 자신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통로로 이미 이용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메타버스라는 하나의 선택지가 새로 등장한 것이다. 작가들에게 이를 활용해야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본인의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시공간으로서 메타버스가 의미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맞다.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누군가는 메타버스의 시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협업의 무대로 사용할 것이다. 미술계에서 메타버스는 여러 층위로 작동하는 상상력과 가능성의 공간이고, 이러한 고민이 부족하거나 맥락에 부합하지 않는 메타버스와 예술의 만남은 이벤트에 그치게 될 것이다.
  둘째, 메타버스가 가지고 온 또 다른 변화는 작품의 형식이나 외양이 아니라 창작 커뮤니티로 들어오는 구성원들의 다양성이다. 사실 메타버스 이전부터 미술계에서 등장하는 재료들은 전통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3D모델링 ▲가상세계 ▲온라인 ▲블록체인까지 그 한계가 없었다. 이제는 메타버스를 기점으로 미술계와 인접 분야,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 분야에서 오는 구성원들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간혹 기술 재료들이 여전히 작품 안에서 키워드로만 소비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협업과 공동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 자체가 변하고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기존 미술계가 가지고 있던 관점과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미술계에서 통용됐던 작품과 전시의 기준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이 메타버스와 미술의 만남을 특별하게 한다. 문화예술 지원기관들의 아트앤테크, 융합예술 등 새로운 이름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면 확장하는 커뮤니티를 담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미술의 사용자 경험이 중요해지는 이유

 

  메타버스에서 작품 경험이 전개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언제까지고 메타버스를 이상적인 미래상으로 그리며 막연히 작가들의 상상과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제 현장 중심의 실제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는 아트앤테크놀로지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의 예술과 첨단기술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데 최근의 보고서인 ‘Future Art Ecosystem 2: Art X Metaverse’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보고서에 등장하는 ‘예술의 사용자 경험(UX of Art)’이라는 표현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메타버스를 작품의 시공간으로 선택한 모든 작가에게 사용자(User)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에 대한 이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지금도 작가가 전시공간과 관람객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시에 참여하지 않듯이,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작품을 만들고 선보이는 공간은 화이트큐브 모델이 아니라 메타버스 내 ‘예술의 사용자 경험(UX of Art)’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 가지 측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이제 메타버스 안에서 선보이는 미술작품은 유일하거나 완결됐다고 보지 않는다.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사용자 경험은 작품의 진본성 및 유일성에 기대기보다는 작품을 상호작용하는 경험에 기댄다. 둘째, 메타버스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앞으로 불특정의 ‘일반적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흔히 온라인 가상공간은 접근성이 높으며, 모두에게 열린 채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각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하는 이용자는 특정 커뮤니티나 특정 분야에 익숙한 관람객이다. 작가가 어느 메타버스를 선택하는 행위는 특정 커뮤니티의 사용자 그룹을 관람객으로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더욱 관람객 커뮤니티의 사용자 경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게임성이 가득한 메타버스에서 선보이는 미술 작품은 게임 사용자의 탐색 경향이나 선호하는 인터페이스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셋째, 이제까지 미술작품의 경험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마주하는 대상 그 자체이거나, 그로부터 출발하는 경험이었다면 메타버스의 미술은 작가가 작품을 기획하거나 창작하는 과정에서부터 가상공간에 생성되는 과정, 관람객이 향유하거나 확산하는 과정까지 일련의 경험이 된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이제부터

 

  메타버스를 향한 관심이 최근에는 다소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바뀔 수는 있어도 현실의 경험과 연결된 가상, 그리고 기술이 매개하는 사용자 경험의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메타버스는 미래 문화예술 경험의 플랫폼이 돼 기술과 산업의 속도대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작가들이 웹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듯, 메타버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근미래에 메타버스를 위한 창작 도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영상 편집 도구와 소프트웨어처럼 메타버스를 매개로 작가들이 작품을 전개할 수 있도록 모델링과 가상환경을 위한 저작 스튜디오, 작가의 오너십을 강화하는 콘텐츠관리자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작품을 발행하고 송출하는 채널관리 소프트웨어 등이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기술집약적이고 협업 기반의 창작 환경 안에서 작가는 이제까지의 예술적인 글쓰기 방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과 세계관을 전달하게 되고, 디지털과 메타버스에 대한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메타버스와 미술의 만남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면 늘 개운하지만은 않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대한 사용자 개인 차원의 우려와 더불어, 메타버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개인과 개인 간의 격차 때문이다. 앞서 메타버스 리터러시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도 모두가 같은 조건 아래 메타버스를 경험하고 있지 않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더 해리스 폴의 기술 관련 조사를 살펴본 결과,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나 호기심 자체가 세대뿐만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메타버스가 가지고 오는 장밋빛과 함께 그늘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타버스와 미술의 만남에 대한 논의가 지금까지 사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지속적인 연구·창작·실천의 장이 돼야 한다. 결국 메타버스는 가상화된 작품을 단순히 게시하는 온라인 공간에 멈추기보다, 확장하는 창작 커뮤니티 안에서 작가의 세계관을 전개할 수 있으며 한계 없는 시공간으로서 문화예술 경험의 미래가능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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