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택 / 독립기획자

[예술_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이번 기획에서는 ‘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엄은 전시기능 이외에도 수집과 보존기능, 미술정책 및 학예 연구, 교육 및 출판기능 등 현대에 들어와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됐다. 이에 뮤지엄의 각 기능과 업무를 살펴보고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뮤지엄 패러다임 변화 ②연구 및 수집의 장 ③전시기획과 운영 ④뮤지엄의 출판기능

 

우리 시대의 미술관, 그리고 전시기획

 

장진택 / 독립기획자

 

미술관의 정의와 위상

 

 
 

  오늘날 미술관의 의미 정립은 큰 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이러한 상황은 그저 단일한 순간으로서 축소될 수 없이 일정 기간을 점유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기에, 미술관은 불변의 제 지위를 찾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 위상을 정립해내야 했다. 미술관은 다양한 하위 부서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하위 부서는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도맡아 내부 구성원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그 역할이 규정돼 있다.
  이에 더해, 미술관 조직은 다단한 층위에서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의도와 의지에 기인해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 또한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미술관이라는 기관이 수행하는 역할은 보통 국내에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물관미술관법)」으로, 국제적으로는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 이하 ICOM)가 공고하는 ‘뮤지엄(Museum)’의 정의로 가늠한다.
  전자의 경우는 박물관미술관법 제2조에서 꽤나 구체적으로 “‘미술관’이란 문화 및 예술의 발전과 공중의 향유 및 공유 증진에 이바지하는 박물관 가운데 특히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하는 시설”임을 밝힌다. 후자의 경우는 한층 포괄적으로 미술관을 정의한다. 2022 ICOM 프라하 대회에서 채택된 ‘새로운 뮤지엄 정의(The new museum definition)’에 의하면 “뮤지엄은 유형 또는 무형의 유산을 연구, 수집, 보존, 해석, 전시하는 사회를 위한 비영리적 영구 기관으로, 대중과 커뮤니티의 소통 및 참여를 동반하면서, 그들에게 교육, 즐거움, 성찰, 지식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해야 한다.

 

전시가 표상하는 미술관의 책무

 

  이와 같은 미술관의 정의로부터 책무는 결정되며, 이는 크게 ▲전시 ▲연구 ▲수집 ▲보존 ▲조사 ▲교육 ▲해석 등으로 구분된다. 그중 ‘전시’라는 범주는 가장 가시적인 증빙의 근거가 될 것이다. 전시를 제한 미술관의 책무들은 단독으로도 수행될 수 있겠지만, 그 계기와 결과는 통상적으로 결국 전시라는 형식으로 귀결하거나, 최소 연동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술관의 의사결정은 미술이 항상 자기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주체성과 보편성, 이 두 가지의 충돌적 제안 사이에서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박물관미술관법이나 ICOM이 말하는 미술관의 정의에 명시됐듯 그 선택은 보편성을 당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술관의 관계와 양상은 전시의 대상이 되는 작품이나 작가 그리고 전시의 또 다른 참여자인 관람의 주체 사이에 자리하고 있음이 명확해진다. 이는 곧 전시를 중심으로 작가와 관객을 엮는 소위 ‘매개(Mediation)’의 과제가 최우선으로 처리돼야 비로소 나머지 기타 기획의 정상적인 작동이 가능할 수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미술관의 주요한 구성원들인 학예사(Curator)들이 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작가와 관람객도 각자의 지위에 맞는 역할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부지런히 실천한다. 작가는 전시의 형식 내에서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맥락지어진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는 한편, 본래 스스로가 구축해 오던 작업의 서사를 일관되게 이어나가는 데에도 집중해야 한다. 또한 관객은 관람의 행위를 통해 전시의 형식 및 개념을 공감과 이해의 영역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전시는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 주체들 사이에 일으켜지는 상호작용의 시스템 그 자체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전시의 기획은 서로 다른 자아들의 실현 욕망이 한데 모인 일종의 복합체를 구조하는 차원의 실천임을 관계 주체들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전시기획의 의미

 

  이렇듯 전시는 미술관의 정의를 규정케 하는 하나의 제도적 장치이며, 미술관은 문화 예술의 범주를 지지하는 어떤 정치적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명제는 전시기획의 수행이 곧 사회에서 유효해야 할 예술, 그 당사 주체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주요한 실천과 유비함을 뜻한다. 해당 기관으로 예술이라는 자율적 분자를 통해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현대성을 발굴하는 데 일조한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모마)이나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인 공장을 문화 예술의 창조적 시공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해낸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이하 테이트)이 대표적이며, 국내 기관으로는 각 1969년과 1988년에 개관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특별시청 산하 서울시립미술관 정도가 있다. 이들 미술관은 모두 공적 기관 또는 공적 기관의 특징을 갖는 사적 기관으로서, 국내외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모마는 1929년 릴리 P. 블리스(Lillie P. Bliss)와 매리 퀸 설리반(Mary Quinn Sullivan),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Abby Aldrich Rockefeller)에 의해 설립된 기관으로, 운영의 총체는 의사회와 관장이지만 자체 충족 수입을 제하고는 뉴욕시와 뉴욕주 그리고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필요 운영 비용을 제공받는다. 1889년 헨리 테이트(Henry Tate)가 개관한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를 근간으로 하는 테이트 역시 순수한 민간 미술 재단으로서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영국 정부의 재정 관련 행정부처인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가 주도하는 문화예술지원정책 후원을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애초에 국가 정부 기관이나 시 행정 기관 산하에 소속돼 있기에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바로 미술이라고 하는 개념의 성립에 뒤따르는 ‘전문성’이다. 전문성은 이전에는 미술사나 현대미술, 최근에는 개념 미술이나 동시대 미술 등의 용어와 함께 미술에 외재돼 왔다. 나아가 연구·수집·보존·조사·교육·해석 등 여타 미술관의 책무들과 전시를 연동케 하면서, 미술관은 지식과 권력의 유착적 속성을 내재하는 전시기획의 수단으로 ‘학문적’이고도 ‘예술적’인 가치의 ‘정상’ 상회 기준을 자가 형성한다. 전시라는 형식의 본질과 그 기획 의도의 근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전시기획의 실체가 보기보다 많은 이해관계로 점철돼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전시에서의 균형적 역학 관계

 

  관람객은 전시를 보고, 전시는 이들에게 일정한 내용과 의도를 전한다. 이렇게 마련된 전시의 내용과 의도를 전시기획이라고 일컫는다. 전시기획은 전시의 역할을 생각할 때 그것이 행해지는 시공, 즉 미술관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일찍이 종합병원이나 감옥과 같이 그 자체가 당연한 사회적 권위를 상징토록 기획된 공적 기관이나 제도의 권력이 지식과의 연계 과정에서 생산되며, 이는 다시 하나의 ‘통치성’을 행사하는 도구로써 활용된다는 것을 그의 계보학적 연구에서 폭로한 바 있다.
  미술관 또한 마찬가지로 집단이나 개인의 인식과 규범 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지식과 담론을, 이른바 전시의 형식과 그 기획의 의도로 실현하는 ‘배제의 틀’을 통해 생성함으로써 특정 시기의 사회와 구성원을 일정한 방향으로 통제하는 ‘권력 지식 관계’를 차용한다. 물론 모든 조직이나 체계, 구조나 체제는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본성일 것이다. 전시를 둘러싸고 이토록 지나치고 복잡하게 형성된 역학 관계를 굳이 알아야 하느냐면 꼭 그럴 필요나 의무는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든 어느 때든 이 기획으로 인해 전시라는 범주에서의 참여 혹은 배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미술관이라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기획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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