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의도] 신약개발의 오늘과 내일


보통의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지독하리만큼 길었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그동안 누리고 있던 온전한 일상이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됐다. 다소 피곤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던 삶의 터전은 공허함으로 채워지고, 사랑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은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마치 전쟁을 겪는 듯한 혼란은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았기에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았으며, 한편으로는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을 찾아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올해 9월 1일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 의약품관리과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의약품 시장규모가 전년 대비 9.6% 증가해 25조를 돌파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 같지만, 이 성장의 이면에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수입실적 상승이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이 숨어져 있다. 또한 생산·수입실적 상위 1~3위를 차지한 항목이 모두 ‘코로나19 백신·치료제’라는 사실은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가 종식됨과 동시에 사라질 거품과도 같은 현실, 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지금은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다.
  의약품은 생명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략자산으로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동안 인류가 서로 죽고 죽이는 ‘물리적 전쟁’을 벌여왔다면, 이젠 거대한 지구환경을 대상으로 ‘생존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코로나는 지속적으로 변종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미처 다 극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원숭이두창이라는 새로운 감염병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를 고려해 본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의료자산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평온한 일상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닌 손톱만한 알약일지도 모른다.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많은 이들이 하나의 약물을 개발하는 과정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평균적으로 10~15년이 걸리는 이 과정 속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매몰된다. 그렇기에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을 찾더라도 벤처 회사나 영세한 제약 기업의 경우, 경주의 마지막까지 달리지 못하고 대형 제약사에 기술이전해야만 했다. 황금을 낳아줄 거위의 알을 부화도 시켜보기 전에 팔아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던 와중 휘몰아친 팬데믹은 공포와 동시에 기회를 선사했고, 신약개발에 과감한 투자와 연구력 집중을 유도하는 국가정책을 이끌어 냈다. 특히 작년에 출범해 2030년까지 총 2조 1758억 원이 투입될 ‘국가신약개발사업’은 그 규모가 전무후무할정도로 크기에, 과연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개발과 허가 그리고 시판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 기업과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대비 상당한 투자가 이뤄질지라도, 세계시장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도 국내의 전문인력은 그 규모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이런 차이를 극복해 낼 필요가 있다.


혁신이 필요한 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질병과의 사투를 극복하기 위해 쌓아온 정보들은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이는 하드웨어와 알고리즘의 발전 덕분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재작년에 발간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 국내·외 현황과 과제」에서는 “빅데이터를 구축하여 이를 인공지능에 활용”하면 “신약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가장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후보물질 도출 단계’ 및 ‘임상시험 단계’에 적용한다면, 5배 이상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인력 소요 또한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미국의 제약사 Recursion Pharmaceuticals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약물에 대해 임상 1상 임상시험용신약(Investigational New Drug, IND)를 식품의약품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으로부터 승인받는 등 실제적인 사례가 등장함에 따라, 더이상 가설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비단 탐색의 과정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임상 개발 및 허가·사용 등 광범위하게 인공지능이 활용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서열 분석 기술의 신속·고도화 등으로 생성되는 정보는 데이터베이스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시켰고, 이는 곧 약물과 질병 간의 상관관계 규명과 치료법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식약처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 개발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으로도 AI 헬스케어산업 규모가 2016년 약 0.8조 규모에서 2024년에는 약 11조 규모로 급격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팽창하는 산업의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 및 정부는 선점을 통한 우세를 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글로벌 의약품 생산기지


  화학 분자들로 구성된 기존 ‘케미컬(Chemical)의약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공장증설 비용이 크지 않았으나, 최근 대두되고 있는 ‘바이오(Bio)의약품’의 경우는 다방면에서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특히 실제 세포에서 생성된 단백질을 사용하다보니, ▲세포주 배양 ▲유전자 도입 ▲단백질 추출 및 정제 등 모든 과정에 걸쳐 고난이도 기술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요구되는 장비와 비용이 막대하며 반도체 공정만큼의 청결도가 유지돼야 하기에, 세심한 관리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단된 공간에서 시스템적으로 운영되는 ‘원스탑(One-Stop) 공정’을 기반으로 불순물의 유입을 최소화시키기도 하고, 완벽한 품질관리를 위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라고 일컫는 공정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바이오 의약품의 위탁생산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가 등장했는데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의 사례가 이런 CMO에 해당한다. 이들은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투자해 시설을 확장하면서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올해 말부터 가동될 4공장을 포함해 약 62만 리터의 생산규모를 보유하게 된다. 이는 전세계 CMO의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바이오 의약품 시장이 커지고 있음을 감안해본다면 한국은 글로벌 제약 생산 기지로의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이와 같은 우수한 시설과 자본을 통해 생산 능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제약산업은 일부 관련 전문가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또 다른 전염병이 오더라도,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선 제약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하반기 특집호에서는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고, 나아가 현재 평범한 삶을 꿈꾸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약산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윤홍률 편집위원 | ryul0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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