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원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원우


  1인분 하기 힘든 세상이다. 아니 적어도 나의 삶은 그런 듯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특별한 욕심 없이 물 흐르듯 살아왔고,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다. 남부럽지 않은 연애도 했었고 이 악물고 공부도 해봤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현재를 맞이한 지금, 여지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사실은 무용하다는 현실에 적잖이 절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야만 하는, 나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조금 털어놔 볼까 한다.
  최근 부모님의 생신을 맞아 가족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느 집 자식들처럼 좋은 식당에서의 식사나 비싼 선물을 해드리지 못하는 ‘고작’ 대학원생이지만, 가진 것이 밝은 성격뿐인지라 많이 웃게 해드릴 수 있던 며칠이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자주 마주하지 못한 사이 두 분의 얼굴엔 주름이 자리 잡혀 있었고, 손은 거칠어져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공부는 그만하고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두 분의 말씀에 선뜻 “아니요, 조금만 더 하고 싶어요”라고 욕심스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다.
  어릴 적부터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길 바랐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누군가의 남편이, 그리고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길 원했다.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당시였음에도 이상하게 그 목적만은 뚜렷했다. 화려한 생활을 꿈꾼 건 결단코 아니다. 그저 가족과 축구장, 야구장 때로는 강변 버스킹을 구경하면서 함께 즐기고 같이 떠드는 영화 속 일상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내가 살아가길 바랐다. 어느덧 부모님이 부모가 된 나이가 됐지만, 어쩐지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듯하다. 아니, 실제로도 그렇다.
  대학원의 출발선에 서서 마음속으로 정했던 목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어쩌면, 반복되는 취업의 실패로 나의 무능력함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시작한 지금 이 생활의 중간쯤에 선 나는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이 됐는가. 강박에 휩싸여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건드렸던 것은 많은데 여전히 목적지는 멀리 있고,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확실하다.
  모두가 퇴근한 연구실에 남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불현듯 떠오른다.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은 두 글자 ‘평범’ 그 자체인 세상인데, 왜 이 몸뚱이 하나 책임질 능력도 없는 현재인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참고 이겨내면 아침이 오긴 하는 건가.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입엔 재갈을 물리고, 두 눈에는 안대를 채웠던 지난날의 나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뿐인가. 나는 이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대학원생은 이런 걱정조차 사치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잡생각들을 장작 삼아 더 밝고 뜨겁게 남은 학위 기간을 불태우려 한다. 수십 년 동안 내가 쌓아 올린, 비록 모래성인지도 모를 그것을 기어코 유리성으로 만들어 낸다면 적잖이 떳떳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뒤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가족들과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연들을 환한 미소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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