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권리를 말하다

 

  2022년 3월 9일, 6월 1일. 올해 두 번의 수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제20대 대통령선거(이하 대선)’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선)’를 맞아 국민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연이어 예정된 국가행사는 설 연휴의 주된 화두였으며, 한국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일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몇 년째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가 위기 극복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와 투표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정책 사안에 전 국민이 직접 참여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리더십과 통찰력을 지닌 대표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선거는 우리의 삶에 필연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며, 투표는 개인과 국가의 미래 방향성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힘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후보자의 정책을 꼼꼼히 살피고 역량을 파악해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덧붙여 높은 투표율은 정치인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각성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이는 정무에 대한 열의와 공약 실천에 대한 행보로 이어져 현실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곤 한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다시금 선택받고, 인정받기 위해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 스스로가 권리를 포기한다면 그들 역시 우리의 삶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어차피 뽑아 봤자 달라질 건 없다”, “나 하나쯤 안 뽑아도”라는 말들은 여전히 눈에 띄고 있다. 여러 후보자와 정당의 ‘네거티브 경쟁’에 질린 환멸임을 이해하는 한편,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태도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들의 말대로 큰 변화는 단시간에 체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은 행동이 모여야만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 안에 있는 우리부터 먼저 움직이는 것이 마땅한 순서가 아닐까.

  “정치에 무관심한 벌은 가장 저급한 인간에게 지배받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은 현대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反) 민주주의자였던 그이지만 정치인의 덕목을 요구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적합한 역량을 갖춰 사회를 한층 더 발전시킬 ‘리더’가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은 시공간을 막론하고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리더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상황이다.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남지 않은 대선과 그 후 다가올 지선은 유권자의 권리를 보여 줄 수 있는 날이다. 표심을 얻기 위한 허위 공약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진심’ 어린 공약을 말하는 이의 당선을 바라며, 한 표를 행사할 수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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