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존 /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새로운 학기, 참 강의를 대망하며

이계존 /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작년 초 시작된 역병이 우리네 모든 살림을 엉망으로 흩어놓았다. 근본 대책은 고사하고 극단적 파국만 겨우 면하는 지경이다. 혼잡한 상황에 많은 것이 새로이 요구됐고 이를 뉴 노멀(New Normal)이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기에 우리에게 생겨난 새로운 표준이란 호들갑스런 잠시의 유행일 뿐 영 마뜩하지 않다.

  교육현장도 이로 인해 요란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오히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 역병 때문에 임시방편의 것들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겉모습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강의와 학업을 수행함에 있어 결코 달라져서는 안 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이렇듯 교육의 본질에 대해 궁리하던 중 거의 사십여 년 전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학부 저학년 시절 필자는 교양과목 중 하나로 국어국문학 강의를 수강했다. 담당 교수는 지금도 여전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정현종 선생님이었다. 당시 수업을 시작하며 선생님이 하신 첫 번째 일은, 출석 부르기 또는 서둘러 진도 나가기가 전혀 아니었다. 그분은 강의실에 들어오시면 으레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당기시곤 했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하염없이 밖을 쳐다보셨다. 봄의 생동, 가을의 조락 등 자연과 교감하려는 시심(詩心)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도 처연하게 전개됐던 교정의 학생 시위를 더 오랫동안 쳐다보시곤 했었다.

  당시는 교내에 경찰이 머물며 시위를 진압하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학생 시위로 극성스러웠던 사월의 어느 날, 선생님은 거의 한 시간여 동안 담배를 피셨다. 아무 말 없이 첫 담배를 태우신 이후 연신 줄담배를 피시는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불현듯 “오늘 수업 그만하자”라며 나가셨다. 일방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매우 불친절한 교수자의 악행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도 그 시절 그 수업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한다. 사제지간에 분명 오고가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소리 없는 말’이 부지불식간 오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같은 고민을 하며, 학생들은 각자 생각에 빠지고 또한 이를 정리해 나갔다. 소리가 없음에도 맘껏 아우성쳤고 차츰 하나로 모아져 갔었다. 그 수업을 통해 손가락이 아니라 그 가리키는 달을 구하는 암묵적 강의, 그리고 야무진 학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역병으로 신음만 가득한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필자는 파격적이었던 정현종 선생님의 강의, ‘소리 없이 소리 큰 강의’를 속절없이 그리워한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즉 교육의 본질을 어렴풋이 파악하고자 한다.

  거의 2년 여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교정과 강의실에서 제자들이 사라지고 교수자의 존재 또한 사라져가고 있다. 감시를 위한 카메라 렌즈만이 번뜩이고 있다. 학교는 하염없이 무너지고 있다. 교육이 분열되는 미증유의 위기에서 이제까지 당연하게 누려왔던 학교의 모든 일상이 무척이나 소중했다는 당연한 깨달음만이 허망한 위안이다.

  이제 가을 학기가 새로이 시작한다. 비록 다소간 힘에 부치더라도 필자를 포함해 모든 선생이 본래적 수업에, 또 모든 학생이 본래적 학업에 한층 치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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