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청 /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정신, 안녕하신가요?] ④ ‘건강한’ 정신을 위해

정신건강이란 단어에 새겨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의 불편을 말하면, 왜인지 모를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정신질환 진료와 관련해서 양지보다 음지에 있다는 편견이 더 크고,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 마음 편히 논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건강한 정신을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담아보고자 한다. 본 글은 이종명·이승아 (2017). “일상으로 들어온 정신병”, 『미디어, 젠더&문화』, 32(1): 41-74를 기초로 작성됐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낙인이라는 굴레 ② 시간과 시선에 따른 변화들 ③ 미디어에 담긴 정신건강 ④ ‘건강한’ 정신을 위해

 

 
 

 

위태로운 대학원생의 건강

 

  2020년 7월, 미국에서 시행한 한 평가에서 대학원생 32%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 유병률이 증가한 것도 있겠지만, 2019년 동일한 조사에서의 수치가 15%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특히 2018년 네이처(Nature Biotechnology)에서는 대학원생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유병률이 일반인구 집단의 6배에 달한다는 가히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국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조차 없다. 대표적으로 2012년 서울대 대학원생의 2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찾아볼 수 있으나, 이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지역사회실습보고서 내용 중 일부일 뿐이었다. 정부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연구자료 혹은 학술 논문에서 본격적으로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을 다룬 사례는 필자가 아는 한 없다. 이처럼 해당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관심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려운 사실이 우리의 현재다.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각종 학술적·행정적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수업료를 내고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란 점은 대학원생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어려움을 구조적 시스템에서 기인한 문제라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개인이 모든 걸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각이 대다수인 것이다.

  한편 미디어 속 대학원생의 초상은 보통 사회적 무관심 혹은 냉소적 태도가 그대로 반영되곤 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 “바트! 대학원생을 놀리지 말거라. 그들은 그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야 (Bart, don’t make fun of grad students. They just made a terrible life choice)”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는 대중문화가 대학원생 에게 보인 가장 큰 관심으로, 그만큼 그들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풍자의 대상으로 자리한다는 모습에 대한 시사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해당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대부분 이공계 대학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더욱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조적인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는 대학원을 경험해본 사람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의 수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위와 같은 이미지는 그저 유머로만 소비되기 일쑤다.

 

모호한 정체성이 주는 불안감

  대학원의 사전적 의미는 학부 때에 비해 보다 한층 더 심오한 학습이 이뤄지는 과정이 다. 따라서 그 시간은 학부보다 더 심화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그렇게 본인의 연구결과를 정리하고 이를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때 연구와 관련된 것 말고도 각종 행정업무, 대인관계, 경제적인 어려움 등 다른 문제들 역시 못지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누구나 대학원에 입학할 때는 최첨단의 지식을 습득하고 학문적인 깊이를 심화시키며 뛰어난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꿈꾸지만, 연구가 아닌 각종 업무에 부딪히게 되면 왜 대학원에 들어왔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리기 십상이 되기도 한다.

  대학원생 시기는 학생 신분의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연령에 따른 발달과제의 수행이 유예된 시기로 볼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이론을 통해 20~40세 사이의 시기를 초기 성인기로 규정하고, 이 시기에 달성해야 할 발달과제로 ‘친밀감 대 고립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때 친밀감이란 가족 이외 다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새로운 가정을 이루거나 직업적인 성취를 거쳐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학원에 들어가면 20~40세까지 중 상당 기간을 학생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사회적인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본질적인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변의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대학원에 진학한 선택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되묻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나이에 부모님의 지원에 기대고 있는 현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기에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의 시스템은 대학원생을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가스 라이팅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비난하는 행위 등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판단 능력을 의심하도록 만들어서, 가해자에게 결국 의지 및 복종하게 되는 일종의 세뇌를 말한다. 피해자 주변 관계를 모두 단절시켜 고립 상태에 이르도록 만들고, 외부 사람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실에 고립돼 교수님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은 가스라이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특히 그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 방식과 실제 연구 수행에 있어서 방법론적인 측면을 지도교수 혹은 연구실 선배로부터 배워 이를 훈련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렇기에 이는 때로 정상적인 수련 과정과 가스라이팅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바쁜 일상생활 및 외부와 단절된 환경 때문에 본인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을 위한 조언

  그렇다면 대학원생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뛰어난 연구 능력이나 능수능란한 처세술 역시 도움이 되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장점을 갖출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다소 진부한 얘기들이 될 터임에도, 몇 가지 팁을 정리해볼까 한다.

  첫째, 나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사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호의적인 사회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요구 혹은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내 생각이나 행동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 또는 목표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타인이 우리 인생의 목표를 정해놓으면, 원치 않아도 그 목표를 좇아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생긴 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아예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의 기준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의 요구와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손절’을 잘해야 한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는 미래에 대한 각자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산 주식이 항상 상한 가를 치면 좋겠지만, 차트가 음봉일 때는 앞으로의 흐름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주가가 다시 오르기를 기대하다가 쪽박을 차게 되는 경우가 흔하듯, 지금까지 투자한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본전을 건질 생각에 매달리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수 있다. 대학원에서 경험한 여러 과정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손절을 못해 우량주로 갈아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셋째, 스스로 본인의 정신건강을 돌봐야 한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나 가벼운 우울증은 운동, 취미생활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학원생이 여가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우울증이 심해지면 단순히 기분만 울적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저하돼 업무 효율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스스로 자책하면서 우울증이 심해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논문을 쓰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다면 우울증이나 성인 ADHD의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학내 상담실을 방문해서 도움을 받거나,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전문의의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본인 정신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대학원생 여러분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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