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9.5 일 09:49
기획사회
[사회Ⅱ] 일상의 드라마, 이상한 정신질환이종명 /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연구교수
김한주 편집위원  |  auchetec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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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승인 2021.05.11  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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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안녕하신가요?] ③ 미디어에 담긴 정신건강

정신건강이란 단어에 새겨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의 불편을 말하면, 왜인지 모를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정신질환 진료와 관련해서 양지보다 음지에 있다는 편견이 더 크고,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 마음 편히 논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건강한 정신을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담아보고자 한다. 본 글은 이종명·이승아 (2017). “일상으로 들어온 정신병”, 『미디어, 젠더&문화』, 32(1): 41-74를 기초로 작성됐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낙인이라는 굴레 ② 시간과 시선에 따른 변화들 ③ 미디어에 담긴 정신건강 ④ ‘건강한’ 정신을 위해

 

   
 


일상의 드라마, 이상한 정신질환

이종명 /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연구교수

  모두가 정신질환을 앓는다. 오랜 친구도, 유명 작가도, 심지어 정신과 의사도.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럴 수도 있지, 드라마니까’라며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드라마 속 모습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일상을 기초로 쌓아 올린 가상의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와 미디어 속 대상들을 겹쳐 읽는다. 허황한 작품도 등장인물만큼은 지극히 일상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질병은, 특히 정신질환만큼은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정상이 아니야’ 속 은유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그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1978)을 통해 역사적으로 구축된 질병의 은 유를 걷어내는 데 주력한다.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질병은 일상 언어와 미디어 전반에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덧씌워진다. 질병이 병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사회적인 의미와 상상을 더해 ‘다른 무엇’이 되는 과정, 그것을 손택은 ‘은유’라 칭했다. 질병의 은유로 말미암아 환자들은 병으로 인한 고통 그 이상의 영향을 받는다.

  에이즈가 대표적인 예다. 치료와 관리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질병이 됐지만, 이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의학에 의한 결론이다.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공존할 수 없는 통제와 격리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러한 은유는 때때로 질병이 완전히 정복될 때 해소되기도 한다. 과거 결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 작품의 단골 소재였다. 정념의 질병으로 낭만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대 항생제가 등장해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면서 더이상 신비로운 무언가가 아니게 됐다.

  정신질환 역시 질병의 은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a l’age classique)》(1961)를 통해 통제와 권력의 작동을 진단했다. 공포와 불안의 대상으로서 정신질환은 한낱 광기, 광증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근대적 정신병원의 설립 후 수용과 격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즉 근대 이성의 대두와 함께 비이성적인 것,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추방돼야 하는 개념으로 규정된 것이다.

  의철학자 조르주 캉길렘(G.Canguilhem, 2012) 역시 관련 논의를 통해 의학에서 ‘정상성’을 객관적으로 산출한 평균이 아닌 주관적 규범이라 주장했다. 광기에 대한 언술 가운데 비정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친 사람’이라 부르는 행위에는 자기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는 생각, 즉 정상성에 대한 의식이 내재한다. 유독 정신질환은 신체적으로 앓는 질병과는 다르게 인식한다.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탈’로서, 본래적 의미가 덧씌워져 오명화(Stigmatize) 된다.

 

극적 장치에서 벗어나기

  가정과 법, 그리고 미디어와 같은 소위 ‘사회적 통제 기구’는 정신질환을 일탈적 행위로 낙인찍어 왔다. 특히 미디어는 정신질환에 은유를 덧씌워 사회적 문제로 구성했다. 리즈세이즈(Liz Sayce)는 영국의 언론 보도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부정적인 것과 연결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김성환(2005)을 비롯한 학자들이 본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양상은 미디어를 통해 정신질환자를 범죄자로 동일시하는 은유의 연결고리를 공고하게 만든다.

  할리우드 영화 및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정신질환은 매력적인 소재였다. 미디어 속 캐릭터를 분석한 찰스 위닉(Charles Winick, 1998)은 정신질환을 폭력적인 무언가로 여겨 범죄 활동과 결부시키는 재현 양상을 짚었다. 일례로 〈사이코〉(1960) 등에서 정신질환은 살인마 혹은 폭력적인 인물의 질병으로 설정됐다. 때론 ‘세상은 점차 미치광이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부상하며 정신질환은 매혹적인 대상으로 묘사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나 〈샤인〉(1996)이 대표적이다. 정신질환을 도구적으로 활용해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드라마에서도 같은 재현이 반복된다. 2010년대부터 정신질환을 앓는 남자주인공과 그를 치유하는 여자주인공의 설정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의 남자주인공이 앓는 폐소공포증, MBC 〈킬미, 힐미〉(2015), SBS 〈하이드 지킬, 나〉(2015)의 다중인격장애 등이 그것이다. 소위 성격 괴팍한 재벌 왕자와 그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드는 신데렐라의 만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써 정신질환이 쓰였다.

  반면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는 결을 달리한다. 남녀주인공 모두 정신질환을 앓는 흔하지 않은 설정도 모자라 드라마 속 모두가 정신질환을 앓는다. 조현병을 앓는 남자주인공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매화마다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이는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이 말하는 “인구의 80%가 가벼운 신경증을 앓는” 실제 세상의 직접적 재현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은 갈등 구조의 대부분에 스며들어 있다. 단지 ‘이상하다’라고 치부될 수 있는 행동도 ‘자기애성 인격 장애’로 진단한다. 때론 과할 정도로 모든 상황에 정신질환을 대입한다. 이는 질병의 명칭을 붙임으로써 증상과 질병의 연결고리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다. 수전 손택이 말한 ‘신비스러운 구석’의 여지를 두지 않으려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단순히 극적 장치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병의 원인을 보여주고 치료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간 대부분의 정신질환 관련 드라마에서 보인 한계는 ‘치유의 극적 묘사’였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한 환자가 드라마 전체에 걸쳐 등장하기도 하는 등, 치료 과정과 더불어 환자의 변화를 꾸준히 그려냈다. 이는 정신질환의 장기적 치료 특성과 맞닿아 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전개 속 정신질환의 진행 과정과 치유를 적절히 배치하면서 갈등과 그 해소를 그려냈다.

 

괜찮지 않아. 사랑이 아니니까

  최근 다시 정신질환이 드라마의 중심 소재로 떠올랐다. KBS 〈영혼수선공〉(2020),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가 대표적이다. 앞서 언급한 〈괜찮아, 사랑이야〉와 함께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걷어내고자 했다. 누구나 앓고 있으며,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무언가로 말이다. 특히 <영혼수선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섭식장애, 불안장애, 알코올중독 등을 소재로 한다. 이 과정에서 병을 ‘고치는’ 치료가 아닌 ‘낫게 하는’ 치유의 의미에 방점을 둔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가 있다.

  먼저 드라마의 극적 전개를 위한 ‘사랑 서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신질환을 의학적 용례에 조응해 사실적으로 묘사했지만, 끝내 연인의 사랑으로 주인공을 치료한다. 매력적인 주인공이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설정으로 사회적 통념과 거부감에 대한 저항적 해독을 끌어냈음에도 해결은 결국 ‘사랑’이 한 것이다. 게다가 의사와 환자의 사랑을 통한 정신질환의 극복은 현실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전이 감정’을 통해 의사에 의존하는 환자가 서로 사적 관계를 맺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이며, 법적으로 금지된다.

  또한 정신의학계에서 관련 드라마에 대해 호평하면서도 경계하는 지점으로 ‘병력 청취’가 있다. 소위 히스토리 테이킹(History Taking)이라 불리는, 과거의 트라우마적 경험에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찾는 방법이다. 이러한 접근은 신경 분비물의 오작동, 전달 물질의 화학적 오류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문제는 일련의 드라마에서 정신질환 원인을 오직 트라우마에서 찾아 극적으로 극복한다는 데 있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또 다른 사회적 편견, 은유 덧씌우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간 미디어는 정신질환을 폭력적이고 위험한 무언가에서 극적 사랑의 장애물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다뤄왔다. 정신질환을 일상의 영역으로 옮겨온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다. 여전히 ‘사랑’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가슴 속 아픈 기억’ 하나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임에도 말이다. 극적 서사의 도구를 넘어선 정신질환 그 자체를 향해, 미디어는 조금씩 은유를 걷어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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