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우 / 가천대 법학과 교수

우리가 잘못했다 ③ 환경범죄 바로알기

순식간에 퍼진 바이러스로 전 세계는 여전히 자연을 건든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현재의 재난은 인간이 자초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자연이 보내온 신호들과 생태환경의 현주소를 다룬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생태학적 가치관의 필요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또한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 우리를 위한 길임을 상기시키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인간이 자초한 불행 ② 생태중심시스템으로의 전환 ③ 환경범죄 바로알기 ④ ‘자연’과 거리두기

 
 

'환경법', 그 방향성에 대해

이근우 / 가천대 법학과 교수

  내 어릴 적 기억은 대부분 대구시 비산동, 그 근처에 있다. 그곳엔 늘 비닐이나 쓰레기 같은 낯선 것들이 흙 속에 섞여 있었고, 굴뚝에선 언제나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집 앞에 흐르던 작은 개천의 물은 검었고, 거기 세워져 있던 그물엔 새들의 잔해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작은 개천에서의 물은 꽤 자주 화려하게 색이 변하곤 했다. 그러나 어렸던 당시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곳을 염색공단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필자가 걸어 다녔던 땅이 쓰레기 매립지에 흙을 쌓아 조성된 곳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지금이야 환경이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곤 하지만 이에 내포된 의미는 아직까진 명확한 형태를 가졌다고 볼 수 없는데, 이는 점차 확장돼 가기 때문이다. 환경 관련 법률들 역시 특징적인 사건들을 계기 삼아 제정되는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일본의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부터 우리나라의 낙동강 페놀 유출 등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문제인식이 이뤄진 것이다.

 

‘상징’에 멈춰버린 법률

  시민들이나 환경단체, 국가가 환경오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응하는 방식은 대부분 법률로 구체화된다. 그 법률들은 금지 및 허용의 조건을 설정하고 대상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문제를 관리하거나 그 관리의 핵심적 요소를 위배한 행위자를 제재한다. 이때 그 위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과태료를 포함한 행정제재가 이뤄지지만, 당해 법률에서 핵심적으로 보호하는 법익 침해 혹은 중대한 위반의 경우는 형벌로 규율된다. 한편 개별 법률을 살펴보면 대단히 세밀한 목록들로 구성돼 있어서 정교한 체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 굉장히 상징적 수준에서만 관리 및 규율되는 속성을 보인다.

  더구나 문제는 이 법률들을 집행하는 일부 기관들조차 이 위법 행위들의 중대성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에 대해 오히려 고용 증가 및 세수 증대를 가져오는 중요한 산업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관련 법률의 세세한 규정들과는 달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및 감시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전(事前) 현장 중심 관리보다는 사고 후 조치와 처벌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보통은 인허가 시에 당사자로부터 제출받는 서류 위주로 즉, 장부상의 관리로 넘어가다가 중대한 재해가 발생한 다음에야 조사 혹은 수사를 진행한다. 그 후에도 일이 매끄럽게 해결되지 않으면,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관계에 흐려진 환경오염의 정의

  ‘건설폐기물의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대기환경보전법’ ‘잔류성유기오염물질 관리법’ ‘토양환경보전법’ ‘환경범죄 등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등은 환경 관련 법률 중에 형벌 규정이 있고 관련 사건 발생 시 환경담당 공무원들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성격의 법률 중 일부‘만’을 나열한 것이다. 이 목록에 없는 법률 40여 개가 더 있는데 이들 대부분에는 각각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세세한 금지 목록, 허용기준, 허용량 등이 규율되고 있다. 더 하위 규정에서는 고시·훈령·예규와 같은 형식도 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본래 행정청 내부기준일 뿐이지만, 사실상 규율을 통해 국민에게 역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 이를 담당하는 중앙정부 부처는 ‘환경부’임에도, 이곳에서의 주 업무는 법령 제·개정 등과 같은 수준에 머물 뿐이다. 실제로 대형 환경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많은 부분의 실제 관리, 감독, 집행은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돼 있다.

  한편 법률명에서도 알 수 있듯, 환경보호라는 동일한 목적을 추구함에도 그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어떤 분야는 생태주의처럼 자연환경의 현상 유지와 복원을 추구한다. 그러나 또 다른 영역에서는 일정 수준 이하의 배출을 관리하는 형태로 규율하는데 이는 동시에 일정 수준 이하의 오염 활동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활 및 산업 활동의 부산물은 언제나 그 이전 상태의 환경에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급진적 생태주의 관점이 아닌 이상 어느 것은 정상적 활동으로, 어떤 것은 환경침해로 파악되곤 한다. 이러한 환경 관련 규율 및 입법 과정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침해가 그 이전까지는 정상적 인간 활동의 일부로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때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시 더욱 그 층위가 복잡해지는 지점이 있다. 이는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통 구호와 같은 추상적 수준에 머무를 뿐, 개별적 사안에 들어가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문제를 다르게 대하게 된다는 뜻이다.

 

무의미한 이분법적 프레임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 관리를 위해 한강 상류의 관리지역에서는 축산업이나 공장 운영 등에 제약을 받게 된다. 또한 그들의 생활폐기물 처리를 위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매립장을 조성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환경 자원을 활용해 이익을 얻는 자와 희생해야 하는 자가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의 조정 역시 환경법 문제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국가 간의 이해충돌도 발생하는데, 특히 황사나 미세먼지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우리는 주변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우리 역시 경제개발 시대에 많은 양의 오염물질을 대기에 방출했다. 또한 방사능 오염수가 아닌 일반적 오염수는 지금도 미세플라스틱과 함께 엄청난 양이 해양으로 방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위험폐기물 수출과 같은 범죄적 행태 역시 존재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선진국의 환경법에 비춰보면 자국에서 그 처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땐, 반합법적 형태를 취하거나 수출 형식으로 개발도상국에 위험물질 폐기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생산한 위험폐기물을 더 가난한 나라에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처럼 환경 관련 문제는 인류가 이 지구에서 현재처럼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악한 범죄자’와 ‘무고한 피해자’처럼 특정한 구도를 설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 개인의 식습관, 소비행태, 국가적 통제, 나아가 국제적 협력 같은 거시적 문제까지 함께 작동해야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양한 층위의 이해대립이 얽혀있는 만큼 그렇게 한다 해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정도의 개선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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