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신 / 《아파트가 어때서》 저자


도시적인 삶의 형식화 ② 도시의 작동 원리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는 한국의 현대 주거 문화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건축공학적 관점에서의 아파트가 가진 본질, 나아가 그곳에 반영된 사회상에 대한 고찰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파트의 구조, 방식, 역사 등을 살펴보고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위치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한국의 미래 주거 형태를 예측해 바람직한 도시 재생 방안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파트의 구조와 방식 ② 도시의 작동 원리 ③ 장수명 주택, 미래의 주거 형태 ④ ‘무지개떡’ 건축을 분석하다

 

인공적인 것의 아름다움

양동신 / 《아파트가 어때서》 저자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건축 단지로 설명할 수 있다. 2021년 일반 분양이 계획돼 있는 해당 단지엔 약 1.2만 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4인 가구 기준으로 보자면 약 4.8만 명이 거주하게 되는데, 이는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강원도 인제군의 인구 약 3.1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인구밀도로는 그야말로 수천배의 차이를 나타낸다. 그런데 한적하고 여유로운 것을 선호할 것 같은 인간의 특성과 다르게 사람들은 대부분 강원도 인제군보다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에 더 살고 싶어 한다. 심지어 이들은 수십 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기꺼이 재건축 아파트 일반 분양에 참여한다. 도시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좁은 면적에 다닥다닥 붙어살아도 좋으니, 수십억 원을 들여서라도 이곳을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이번 호에서는 이런 도시의 작동원리는 무엇일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살고 싶은 ‘집’이 되기까지


  처음부터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인류에게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도시계획가 피터홀(Peter Hall)에 따르면, 19세기 말 뉴욕 덤벨아파트의 경우 고작 60m×120m 블록에 605가구가 거주하고 2천781명이 살았다고 한다. 물론 이곳의 일조, 위생, 환기 등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어서 빈민지역 임대주택위원회는 규제법을 제정해 덤벨아파트의 추가건설을 금지하게 된다. 만약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이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렀다면 우리나라에도 아파트 단지라는 주거문화가 활발하게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도 20세기 초 덤벨아파트와 유사한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다. 웹드라마 〈스위트홈〉 배경의 모티브이기도 했던 이 아파트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 아파트와 현재 신축 아파트는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일까.
  먼저 1인당 토지 점유 면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덤벨아파트의 2.6㎡와 올림픽파크포레의 12.5㎡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여기에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인 건폐율이라는 지표를 들이대면 쾌적성은 급격히 벌어진다. 최근 신축되는 국내 대단지 아파트들의 건폐율은 18% 내외로서, 토지의 82%를 녹지로 활용해 거주민에게 쾌적함을 선사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서서 주변을 살폈을 때 콘크리트 벽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 덤벨아파트의 풍경이었다면, 주위를 돌아봤을 때 나무를 볼 수 있고 새소리나 시냇물 흐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곳이 현재 우리나라 신축 아파트의 풍경이다. 이렇게 좁은 면적임에도 다수의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여러 토목구조물이 도시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류는 백 년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도시기반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효율적 시스템 구축의 시작


  다음은 상하수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하천에서 취수된 물은 각 도시의 정수장에서 맑은 물로 처리된 후 송수관을 통해 둔탁한 언덕에 있는 배수지에 저장된다. 이 배수지에서 각 가정으로 이동해 급수가 이뤄지게 되는데, 이때 고층 아파트까지 수돗물을 급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펌프와 배관, 밸브 등의 역할이다. 각 지자체 상수도본부는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잔류염소, 총 트리할로메탄(THM)과 같은 수질관리 데이터와 수압 데이터인 최소동수압 · 블록평균수압 · 압력변동차 등을 관리하며 문제점을 계속해서 파악하고 재구축한다. 아울러 각 가정에서 사용된 하수는 하수처리장 내의 침사지, 침전지, 여과시설 등을 통해 단기간 내에 고형물을 처분하고 소독된 물로 방류되게 만든다. 이처럼 상하수도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한정된 면적에 많은 인원이 모여 살 수 있는 것이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집단에너지 시설 역시 도시를 더욱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이는 LNG 등의 연료를 사용해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시설인데, 열병합발전(CHP-Combined Heat and Power)은 가스 터빈을 통해 1차로 전력을 생산하고, 이후 배열회수보일러(HRSG)를 통해 회수된 폐열을 활용함으로써 전력과 열을 2차로 생산하게 된다. 이 열을 활용해 우리는 지역난방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냉방시스템까지 구축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일반 발전의 에너지 이용 효율은 53%가량인 데 반해,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집단에너지의 경우는 에너지 이용 효율이 80%에 달하게 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도서산간지역의 듬성듬성 위치한 가구에 상하수도 및 전력·난방관을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것보다, 다수가 모여 살아가는 도시의 아파트에 대용량 유틸리티 망을 설치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임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지역에너지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서울의 1인당 최종 에너지 소비량이 1.58TOE(Ton Of Oil Equivalent, 석유환산톤)일 때 강원도는 3.88TOE로 현격히 높은 편이다. 1인당 가정 · 상업 부문 에너지 소비량에서도 서울은 0.84TOE인 데 반해 강원도는 0.86TOE로 여전히 서울시민들이 에너지를 조금 덜 사용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서울 도심의 네온사인과 밀집된 상업시설을 떠올려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지만, 에너지 소비 효율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동선이 집적된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거주한다는 개념이 꼭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


  대중교통 역시 현대 도시가 형성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장치였다.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어 관련 산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교통 취약계층도 이동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반면 전원생활의 경우 자가용이 필수적인 가운데, 이때 운전이 어렵거나 자가용을 구입하기 힘든 교통 취약계층은 생활하는 데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교통안전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도시가 타지역보다 우수한 지표를 보여준다. 2019년 도로교통공단 시도별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인구 십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우리나라 평균은 6.5명인데 서울은 2.6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광역시나 경기도 역시 이 수치는 5를 넘어서지 않지만 강원·충청·전라·경상 지역으로 가게 되면 수치는 두 배 이상까지 뛰게 된다.
  19세기 참혹한 암흑의 공간이었던 서유럽 및 북미의 도시들이 입체적인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교통의 발달 덕분이었다. 일자리가 넘쳐나서 도시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의 경우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 안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한 방에서 여러 명이 모여 먹고 자면서 전염병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가전차, 지하철, 버스 등 새로운 교통 기술들이 등장해 도시의 교외화 과정이 가능해지게 된다. 쉽게 이야기해서 과거 서울에서는 사대문 안만이 통근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이제 서울은 물론 경기도 지역에서도 종로나 강남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한편 세계 주요 대도시들은 강이나 바다를 끼고 존재하기 마련인데, 물을 다스리는 치수 기술이 발전되면서 높은 인구밀도를 이루는 도시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완공된 서울시 양천구 신월 빗물 배수 저류시설의 경우는 터널 지름이 5.5~10m에 다다른다. 목동 지역은 이 빗물터널로 인해 시간당 100mm 폭우가 쏟아지더라도 침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또한 물이 제방을 넘어 범람한다 해도 한강수계에 위치한 소양강댐, 한탄강댐, 고수부지가 있기에 비가 와도 더이상 홍수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도시가 작동되는 원리에는 다양한 구조물들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지공급계획 수립 과정에서 교통 · 재해 · 환경의 영향평가, 에너지 사용계획, 광역교통개선대책 수립 등을 협의하며 신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아파트라는 구조물을 넘어 아파트 단지, 나아가 단지 이상의 도시 속에서 효율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부디 아파트라는 문화를 바라볼 땐 그 너머에 존재하는 도시의 작동 원리를 한 번 들여다보자.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꽤 오랜 시간 축적된 인프라 시스템의 산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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